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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경호원, 투숙객에 "주머니서 손 빼라"...삼엄한 김정은 호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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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세기의 담판을 하루 앞둔 11일 북한과 미국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외부 접촉을 철저히 피하고 막판 협상 전략 마련에 집중한 북측과 달리 미국은 공개적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나섰다. 그 선봉에는 그간 정상회담 준비를 도맡아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오후 싱가포르 JW 매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오후 싱가포르 JW 매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JW 매리어트 호텔에 마련된 백악관 프레스센터에서 단상 앞에 섰다. 브리핑은 당초 오후 5시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이보다 43분 늦게 등장,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미 정상회담 D-1 #긴장감 도는 싱가포르

마이크를 잡은 그는 회담 준비 상황부터 소개했다. “성 김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오늘 오전과 오후에 만났으며 지금도 만나고 있다”면서다. 사실상 실무 협의 상황을 중계하는 셈이었다. 그러면서 “협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우리 기대보다도 빨리 논리적인 결론에 이를 것 같다”며 양측이 이견을 좁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앞서 오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트위터를 통해 김 대사와 최선희의 실무협의 개최 사실을 알렸다. 판문점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미 실무협의의 경우 미 당국이 사전이든 사후든 구체적으로 확인한 바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막판까지 원하는 바를 더 얻어내기 위해 북한을 압박하는 일종의 심리전을 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을 낙관한다”면서도 “북한은 기꺼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우리는 그 말들이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기를 열망한다”며 결국 공을 북한에 넘기는 듯한 발언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회담 장소인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앞에 북한 경호요원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회담 장소인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앞에 북한 경호요원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북한 수행단을 실은 버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묵고 있는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출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북한 수행단을 실은 버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묵고 있는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출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브리핑은 전날인 10일 백악관 수행기자단에 공지됐다. 사전부터 준비된 여론전이었던 셈이다.
외교가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마이크를 잡은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상 미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안보 관련 이슈를 브리핑하는 것은 국가안보회의(NSC)의 몫이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전날 ‘고위 관계자’가 브리핑을 할 것이라고 공지할 때만 해도 대부분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매튜 포틴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브리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관측을 깨고 회담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등판한 것은 현재 정상회담 준비 국면에서 존 볼턴 보좌관의 NSC가 아니라 협상파인 국무부가 핸들을 잡고 국면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선 "회담 15시간여를 남긴 상황에서 양측의 합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한편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 정부의 북핵 관련 연구 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소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미 정부에 북한 핵무기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사를 문제 삼으며 “우린 3개월 동안 수백 명의 전문가와 함께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연구해 왔다”며 “군사 전문가와 에너지부 전문가를 비롯해 미사일 엔진과 각종 생화학무기·생물학·항공우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수십 명의 박사도 있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1일 트위터에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호텔에서 실무회담을 하는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위)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아래 오른쪽)의 사진을 올리고 "북미 실무회담은 실질적이고 세부적이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1일 트위터에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호텔에서 실무회담을 하는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위)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아래 오른쪽)의 사진을 올리고 "북미 실무회담은 실질적이고 세부적이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공개적 여론전에 나선 미국과 달리 북측에서는 막판 준비에 꼭 필요한 인사들만 움직였다. 최선희가 외부에서 성 김 대사와 실무협의를 했고, 김창선 당 서기실장(국무위 부장)이 이날 오후 12시 55분쯤 호텔 로비에서 목격됐다. 호텔 주변에선 “12일 회담이 열리는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최종 점검을 하고 돌아온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날 오후 3시쯤에는 최 부상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을 비롯해 경호원 30여명을 태운 버스가 카펠라 호텔로 향했다. 이들이 현지에서 뭘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김영철·이수용 당 부위원장을 비롯해 북한 대표단은 이날 오전 6시 30분쯤 호텔 1층 식당에서 뷔페로 식사를 했다. 김영철은 에그 스크램블 등을 먹었고, 최 부상은 종업원에게 여러 잔의 커피를 주문해 먹었다.

양측 대표단이 체류하는 숙소 주변은 군부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차단과 통제가 심했다. 이날 오전 김 대사와 실무협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최 부상이 탑승한 차량도 호텔 입구에서 검문을 받은 뒤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호텔 투숙객은 출입문에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한 뒤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검색 과정은 김 위원장의 경호원(974부대원)들이 옆에서 꼼꼼히 지켜봤다. 스포츠형으로 짧게 자른 머리 스타일에 검은색 정장을 한 북한 경호원들은 한쪽 귀에 이어폰을 낀 채 호텔 출입구는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앞, 2층 난간 등을 수시로 오가며 주변을 경계했다. 김창선 당서기실장(국무위 부장)이나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간부들이 외출 후 복귀할 땐 이들을 따라가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안내했다.

이들은 일체의 사진촬영을 허용치 않도록 호텔에 요구했고, 주변 사람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자기들끼리 말을 할 때 옆에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하거나, 암호화된 것으로 느껴지는 눈짓과 손짓으로 의사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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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후 1시 30분( 호텔 로비의 프론트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건장한 북한 관계자가 한국인 호텔 직원을 향해 “밥곽!”“밥곽!”을 외친 것이다. 밥곽은 ‘도시락’를 지칭하는 북한 말인데 도시락을 주문하려는 상황에서 여성 직원이 알아듣지 못하자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아 도시락?”이라고 하자 사내는 “밥곽 두 개를 하는데 빵, 빠다(버터), 냉주스(아이스주스)로…만들어 놓으면 가져가겠다”고 했다.

삼엄한 경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체류 중인 샹그릴라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호텔 별관(밸리윙)에 묵고 있어 호텔 본관까지는 접근이 가능했다. 샹그릴라 호텔 관계자는 “밸리윙에는 허가받은 직원 이외에는 접근이 안 된다”고 전했다.

회담이 열리는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의 경비는 더욱 삼엄해 취재진의 접근이 어려웠다. 회담장 주변과 도로, 호텔 등의 경비에는 ‘세계 최강의 용병’으로 이름난 네팔 구르카 족이 투입됐다는 소문도 있다. 호텔에는 북한 경호원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경호원들도 배치돼 24시간 특별경계 중이다.
싱가포르=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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