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투혼 보여준 가장 빛나는 경기...타이거 우즈의 2008 US오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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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우즈의 마지막 메이저 우승인 2008년 US오픈. 우즈는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없는 상태로 경기했다. [중앙포토]

우즈의 마지막 메이저 우승인 2008년 US오픈. 우즈는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없는 상태로 경기했다. [중앙포토]

타이거 우즈는 2008년 4월 열린 마스터스에서 2위를 했다. 그러나 고통스러웠다. 무릎이 아팠다. 우즈는 통증이 너무 심해 대회기간 중 강력한 진통제인 바이코딘을 복용했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에서 주인공이 복용하던 약이다. 우즈는 샷은 아주 좋았지만 퍼트를 못했다. 진통제 때문에 퍼트감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부상과 통증은 별개, 아픈 건 문제 안된다" #왼쪽 무릎 인대 하나도 없는 상태로 경기 #거친 코스서 91홀 4만야드 대장정 끝 승리 #다음 주 10주년되는 2018 US오픈 개막 #

우즈는 이전부터 무릎이 아팠다. 그러나 마스터스 이전까지는 이를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마스터스 이전까지 11개 대회에서 9승을 했기 때문에 참고 경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웠다.

마스터스 후 우즈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간단한 수술로 여겼는데 검사를 해보니 그의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다 닳아 없어진 상태였다. 이식 수술을 하면 3개월 이상 걸린다. US오픈과 디 오픈 등에 다 나갈 수 없다.

당시 우즈는 파죽지세였고 US오픈 대회장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 토리파인스 골프장은 그가 6번이나 우승한 곳이다. 우즈는 욕심을 냈다. 의사들은 "인대가 하나도 없으니까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통증을 견디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우즈는 통증과 부상을 구분했다. 다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면 경기할 수 없지만, 아픈 것은 어떤 것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무릎 인대가 없는 것은 부상이 아니라 그냥 통증이었다. 우즈는 절뚝거리면서도 “나는 US오픈에 나갈 거고 우승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상황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US오픈은 코스를 가장 어렵게 만든다. 전장은 길고, 페어웨이는 좁으며, 러프는 두껍고, 그린은 딱딱하다. 2008년 대회는 당시로서는 역대 메이저대회 사상 가장 긴 7643야드로 만들었다. 컷탈락이 7오버파였을 정도로 어려웠다.

우즈 조 경기위원이었던 짐 버넌은 “우즈가 1라운드를 끝까지 치러서 엄청 놀랐고, 2라운드 아침에 다시 경기장에 나타나 깜짝 놀랐다”고 할 정도로 우즈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1라운드 첫 홀에서 더블보기를 했다. 무릎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우즈는 무릎 붓기를 빼기 위해 소염제를 먹었지만 퍼트 감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해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

스윙을 하고 주저앉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때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빛났다. 파김치처럼 퍼져 있다가도 공이 울리면 용수철처럼 박차고 나가는 젊고 야심찬 복서를 보는듯 했다.

우즈는 하체가 안정되지 않아 드라이버가 불안했다. 평소 거의 하지 않던 더블보기가 4개나 나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추락했다가도 기어이 다시 올라왔다. 매라운드 시작은 형편없었지만 마지막 홀은 버디나 이글로 끝냈다.

그린에서 놀라운 능력으로 점수를 줄였다.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성공시키는 클러치 능력도 돋보였다. 우즈는 3라운드 18번 홀에서 9m 내리막 이글 퍼트를 성공해 선두로 나섰다.

타이거 우즈가 4라운드 18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후 포효하고 있다. [중앙포토]

타이거 우즈가 4라운드 18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후 포효하고 있다. [중앙포토]

4라운드 18번 홀에서 우즈는 넣지 못하면 우승을 놓치는 약 4m 버디 퍼트를 남겨뒀다. 잔디는 악명 높은 포아애뉴아인데다 늦은 오후여서 그린이 울퉁불퉁했다. 홀 위치는 경사지에 있었다. 정확한 방향과 스피드가 필요한데 그린 상태가 워낙 안 좋아 완벽하게 쳐도 들어간다고 보장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즈는 버디 퍼트를 넣었다. 우즈는 흥분해 양손으로 어퍼컷을 수없이 휘둘러댔다. 동반자 리 웨스트우드는 “엄청나게 어려운 퍼트였지만 우즈는 중요한 순간 매번 그랬으니까 넣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46세의 노장 로코 미디에이트는 2008년 US오픈에서 인생 최고의 샷을 했다. 우즈와 미디에이트는 유일하게 언더파(-1)를 친 선수였다. 둘은 그 난코스에서 72홀 정규 경기에 18홀 연장전, 서든데스까지 총 91홀을 치러야 했다. 4만 야드(약 36km)가 돼서야 대장정이 끝났다.

나이키는 급히 광고를 제작해 연장전 중계에 내보냈다.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의 목소리로 “타이거, 너보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내가 여러 번 얘기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그랬다.

2008년 US오픈은 우즈의 열네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었다. 우즈는 US오픈에선 2위와 15타 차, 마스터스에선 12타 차, 디 오픈에선 8타 차, PGA 챔피언십에선 5타 차로 대승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즈는 “오늘 우승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4만야드의 대장정을 끝낸 후 함께 웃고 있는 타이거 우즈와 로코 미디에이트. [중앙포토]

4만야드의 대장정을 끝낸 후 함께 웃고 있는 타이거 우즈와 로코 미디에이트. [중앙포토]

뉴욕타임스는 우즈의 우승을 두고 “인간의 위상을 넘어 불멸의 존재가 됐다”고 썼다. 우즈는 최종 라운드를 선두로 시작한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승리하는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즈는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못했다. 그가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스캔들과 부상 등이 우즈를 괴롭혔으나 2008 US오픈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은 후유증이라는 얘기도 있다.

14일 2018 US오픈이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시네콕힐스 골프장에서 개막한다. 우즈가 만든 전설이 딱 10년 됐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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