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논의 정국 다시 태풍권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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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홍근 테러사건」이 정치권을 강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역 군인에 의한 언론테러라는 점에서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여야는 모두 사태를 중시하고 경위 해명·배후추궁·문책 등을 소리높이 외치고 나서고 있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분위기, 사건의 배후로 감촉 되는 어두운 기류를 조심스레 주시하고 있다.
오홍근 부장피습사건을 처음부터「백색테러」로 규정하다 시피하고 정치문제로 끌어 올렸던 야당은 예상보다 빠른 범인 검거에 일단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사건의 성질상 현역군인 몇 명이 독자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결코 아니다』며 철저한 배후규명은 물론 국방장관 등 국무위원의 인책, 노태우 정권의 도덕성 문제제기 등 강력한 정치공세도 병행하겠다는 태세다.
한마디로 이번 기회에 「군은 성역」이라는 일부의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국민의 들끓는 여론에 힘입어 뿌리째 뽑아 놓고 말겠다는 것이다.
정부당국의 범인검거발표직후 평민당의 오 부장 사건조사단 소속의 조윤형·최낙도·권노갑 의원 등은 입을 모아 『어느 누가 정부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겠느냐』며『이번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결코 아닌 여권 내 극우파 기류를 대변한 사건이고 현정권이 입으로는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실체에 있어선 전군사정권과 전혀 달라진 게 없음을 여실히 입증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장의 군 차량에 대해『그런 차는 있으나 운행한 사실은 없다』고 대응한 것 한 가지만 봐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는 과거의 은폐조작 사건이나『청소를 위해 옮겼을 뿐이다』(전남「지방청와대」호화시설 은폐사건)라는 최근의 일련의 사건과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이것이 곧 현정권의 취약한 도덕적 기반을 반증하고 있다는 게 이들 의원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야당은 26일의 국방위를 통해 범행동기, 수사지연 이유,「갑작스런」범인검거 발표배경, 배후 유무 등을 철저히 파헤칠 작정이다. 그리고 만일 이날의 국방위에서조차 만족할 만한 진상규명이 안 될 경우 국정조사권을 가진 조사단을 구성, 배후를 규명하고 그 결과에 대해 범인들의 소속부대 책임자는 물론 국방장관에 대한 인책공세까지 펴 나갈 방침이다.
올림픽을 눈앞에 둔 시점에도 불구, 야당이 이처럼 일단 초 강경「밀어붙이기」로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 크게 분노한 국민여론에 힘입어서 이기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문제해결을 제대로 해 놓지 않으면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들이 빈발해 정치·사회적 불안이 조성되고 정치권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림픽 후의 긴장된 정국, 최근의 극우보수세력의 반격태세 등을 볼 때 이번에 단단히 제동을 걸어 둬야 한다는 각오다.
경찰수사는 비록 원시적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지만 군 당국이 부랴부랴 나서 범인검거사실을 발표하기까지 진전된 데에는 군의 명예회복을 위한 자구 적 노력의 측면도간과 할 수는 없겠으나 직접적으로는 역시 야당의 이 같은 정치공세가 큰 압력요인으로 작용했던 때문이라고 보고 그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평민당은「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피습사건 진상조사단」(단장 조윤형)까지 구성, 사건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임으로써「사건 해결」의 선도적 역할을 한 만큼 사건의 추궁에 앞장서고 국정조사권 발동을 들먹이며 공세를 펴 갈 작정이다.
평민당과 함께 이 사건에 큰 관심을 표명해 왔던 민주당도 국방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고 앞으로 전개될 대여 공세에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여 파문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당 측은 현역 군인테러가 가능한 배경이나 군 부내 기류에 대해 내심 적잖은 우려를 갖고 있다. 따라서 무작정 사건을 떠벌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때문에 올림픽 정치휴전이라는 분위기를 감안해 해결방안이 모색될 것이고 곧 있을 청와대개별 영수회담 등을 통해 수습의 가닥을 잡아갈 전망이 짙다.
범인체포 발표 후 부랴부랴 조기진화에 나선 민정당은「오 부장 테러사건」을『6공화국 출범이래 최대의 실수이자 악재』라며 실로 당혹 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대 언론 테러에 현역군인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5공 비리유산에 짓눌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던 차에 이 사건으로 정권의 도덕성 시비에까지 휘말리게 되어 그야말로 『산너머 산』(박준병 사무총장)이 되어 버린 셈이다.
민정당이 이 사건을 처음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은 발생 18일만 인 24일 당직자회의에서였는데 이는 평민당이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정치문제로 삼고 나섰기 때문에「뒷 북이나 친 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회의에서도 당직자들은『군과는 관계없는 사건』이라는 정부측 보고에 조금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군 출신 당 지도부는 사건발생 이후 관계기관과의 계속된 접촉에서 그런 일없다는 답변을 듣고 더 이상의 진상파악에 나서지 않았고 심지어는『칼잡이들의 싸움에서 튕겨져 나온 사건 아니냐』는 치안본부 쪽의 수사방향에 매달렸었다는 후문도 있다.
민정당은 군 문제는 건드릴 생각조차 안 함으로써「집권여당의 상황대처능력」에 대한 의문을 또 다시 제기한 셈이다.
민정당 측은 이 사건으로 인해 그 동안의 전남 도와 일 해의 집기 은폐사건처럼 정부측이 『뭔가 숨기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 동안 김용갑 총무처장관의 체제발언 등 이 불러일으킨 체제논쟁이 합리적인 보수우익의 발상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는 의구심을 낳게 했다는 점 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정당 등 집권층에서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 점은 여권내의 정보들이 흘러 나가고 있으며 여권내부의 동요와 균열이 보이고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인 것 같다. 과거엔 언론 테러 등 이 한번도 밝혀지지 않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사실」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야당 등에 대한 제보 등 이 있었고 이것은 비단 이 사건뿐 아니라 일해·전남도 사건 등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민정당은 이 사건이 몰고 올 비판을 의식해『사후수습에라도 기민함을 보여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국방위소집」과「관계자인책」등의 입장을 재빨리 표명했는데 인책범위엔 소속부대 지휘관은 물론『책임질 사람은 다 포함시킨다』고 해 오 국방장관인책도 시사하고 있다.
민정당은 이 사건이 올림픽 정치휴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기진화에 주력할 방침인데 특히 은폐 기도규명을 강조하고 있어 최소한 사태수습을 잘못해 박종철 군 사건 때처럼 「장기적인」피해를 보지는 않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고도원·김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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