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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공학 키워 장애인 삶의 질 높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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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고,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나 자신이 장애인으로, 장애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두 날이 연이어 지정된 데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많은 사람의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은 장애인일 것이다.

필자는 1980년대 말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느 곳에서나 아주 심한 중증장애인들이 쉽게 눈에 보인 것에 매우 놀랐다. 매우 심한 중증의 전신마비 장애인이 첨단 하이테크 기술을 동원한 고성능.고기능 전동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 휠체어에 탄 채 밴 자동차에 올라 각종 재활 보조기구들을 이용해 안전하게 운전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심한 뇌성마비로 언어 표현을 못하는 장애인들이 전자 의사소통기구를 이용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교육보조기구의 도움을 받아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습은 중증장애인의 학교 입학조차 허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중증장애인 숫자가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 아니라 이동.의사소통.신변처리 등 구체적인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각종 재활공학 서비스가 발달한 덕분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미비한 장애인 편의시설, 전동 휠체어는커녕 양질의 수동 휠체어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재활공학 수준 때문에 중증 장애인들은 평생 집안에 갇혀 지내는 실정이다.

우리의 과학.산업기술 수준이 질 좋은 휠체어를 만들어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장애인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의 무관심이 주요 원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선진국형 복지사회로 가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확대되고, 각종 재해와 고령화로 인한 장애인이 늘면서 재활공학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장애인과 노인을 동질적인 성격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공동대책을 마련하는 추세다. 유럽연합 국가나 일본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기술정책을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재활공학 산업 시장은 확대될 것이고, 엄청난 고용창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런 기회가 대부분 중소기업 부문에서 열릴 것으로 보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제품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활공학은 기업 규모가 영세하고 기술수준은 대외 경쟁력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자칫 세계 시장 참여는커녕 국내시장도 내줘야 할지 모른다.

재활공학 활성화는 장애인과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적 측면, 새로운 제품.서비스 산업과 시장을 확대하는 산업적 측면에서 중요하다. 거국적이고 집중적이며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오길승 한신대 재활학과 교수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