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수가 태평양 한복판에 있다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강원도 영동과 도계를 잇는 영동선 철도 솔안터널의 공사를 맡은 D건설. 2003년 산 양쪽에서 굴을 뚫어가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설계 도면대로 정확히 공사를 했는데 서로 엇갈린 것이다. 부랴부랴 설계를 수정해 일단 굴을 개통했다. 뒤늦게 확인해 봤지만 설계와 측량엔 문제가 없었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도를 잇는 가거대교 시공을 한 A건설사도 2001년 측량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부산과 거제 쪽에서 각각 재어갔는데 연결 부위 높이가 37㎝나 차이난 것이다. A건설은 가설계도를 폐기하고 덴마크의 측량전문 회사를 불러 설계를 수정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 "삼각점과 수준점이 문제였다"=한반도의 전 국토는 지구상의 위도와 경도로 표시된다. 이른바 삼각점이다. 전국적으로 1만6355곳의 표지돌이 있으며 사방이 잘 보이는 산 꼭대기에 설치돼 있다. 수준점은 특정 장소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주로 도로변에 표지돌을 세워 놓는다. 인천시 남구 용현동 인하공업전문대 안에 수준점의 기준인 수준 원점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약 2㎞마다 1등 수준점, 이를 좀 더 조밀하게 나눈 2등 수준점이 설치돼 있다. 전국에는 약 6000개의 수준점이 있다. 따라서 삼각점과 수준점을 알면 특정 지점의 '입체'가 확인되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 결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관리하는 수준점 6000여 개 중 이미 60%를 분실한 상태다. 나머지 40%도 오류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가거대교의 경우 거제 쪽의 기준이 된 진해 수준점이 엉터리여서 오차가 발생했던 것.

삼각점도 부실은 마찬가지다. 전체 삼각점 중 2234개의 표본을 뽑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정밀분석한 결과 약 20%인 435점에서 오차가 발생했다. 이 중 195개는 300m 이상 차이가 났다. 사용 불능이란 것이다.

◆ 지도도 엉망이었다=감사원이 조사해 보니 여수와 포항의 삼각점대로라면 두 지역은 태평양 바다 한복판에 있어야 했다. 강원도 철원군 갈말면은 지중해상에 위치하는 좌표로 표시돼 있었다. 좌표의 기준점이 엉망이다 보니 이를 기준으로 만든 지도나 지적도가 맞을 리 없다. 서울시가 제작한 축척 1/1000 지도의 경우 종로 지역의 좌표가 GPS 분석 좌표와 최고 11m의 차이를 보였다.

성균관대 토목환경공학과 윤홍식 교수는 "시공사만 엉뚱하게 부실시공했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감사원 건설.물류감사국 이영웅 감사관은 "1~2㎝의 정확도를 요구하는 국가기준점이 이렇게 부정확하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 삼각점=경도와 위도의 좌표를 관측해 기록해 놓은 표석. 평면상 위치를 관측하는 기준이 된다. 사방이 잘 보이도록 주로 산 정상에 있으며 전국에 1만6000여 개가 있다.

◆ 수준점=높이를 미리 관측해 기재해 놓은 표석. 주로 도로변 등에 있으며 전국에 6000여 개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