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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일자리 위해 뭐라도 해보자는 광주시…노조는 외면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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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좀 하자”. 대학 졸업 무렵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우리는 취업을 해야 했다. 그러나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뭘 해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손을 놓고 며칠을 방탕하게 보내다 보면 누군가 “뭐라도 좀 하자”는 말을 뱉었다. 답을 알 순 없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던 순간이었다.

이 말을 다시 들은 건 올해 초였다. 이번에도 일자리와 관련해서였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취재하던 중이었다. 사업의 핵심인 적정 임금 실현과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거칠게 요약하면 ‘사회적 대타협’이었다. 일자리란 대의를 위해 서로 양보하자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

고백하자면, ‘이게 될까’하는 마음이 더 컸다. 계약서를 쓰고 법적인 조건을 잔뜩 걸어도 약속을 어기는 일이 흔하다. 게다가 사람 마음은 어떤가. 기자의 질문에 의심이 묻어났는지, 윤장현 광주시장은 시의 노력을 강조하던 중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끼워 넣었다. “일자리는 먹고사는 문제인데 더 급한 게 있겠습니까. 현실성이 낮아도, 가만히 있느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취재 중 만난 사업 관계자들도 사업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뭐라도 해봐야 한다는 확신은 있었다. 그 덕분인지 일은 추진력을 얻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투자금 일부와 첫 위탁생산 물량을 책임질 가능성이 커졌다. 4일엔 현대차 관계자들이 공장 부지 현장 실사에 나섰다. 말이나 글이 아닌, 행동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큰 산이 많이 남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노조가 강하게 반대하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현대차는 더 조심스럽다. 성공이 보장된 사업이라도 노조의 반발이 심하면 일을 벌이기 어렵다. 하물며 광주시의 새 공장 건설은 성공이 보장된 게 아닌, 도전이다.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는 7일 본회의를 열고 '광주형 일자리 실현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사진 광주시]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는 7일 본회의를 열고 '광주형 일자리 실현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사진 광주시]

그럼에도 광주시와 현대차는 한 발을 내디뎠다. 정부도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지역 경제계도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제 공은 노동계, 특히 현대차 노조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일단 현대차 노조는 여러 우려를 표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의 우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우려를 가득 떠안은 도전이라도 해야 할 만큼, 청년들이 일자리로 인해 겪는 고통이 너무 큰 것이 현실이다. 그 청년 중엔 물론 노조 관계자들의 가족ㆍ친지도 포함돼 있다. 뭐라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노조도 사회 주요 구성원으로서 진지하게 이 도전을 연구해보고, ‘뭐라도 해보’는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중앙일보 산업부 윤정민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 윤정민 기자.

윤정민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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