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보기가 민망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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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은 정말 신문을 보기가 민망스러울 때가 많다. 사회기강이 해이해지고 기성세대의 생활풍속이 문란해져서인지 청소년들의 비행이 날이 갈수록 횡포화, 저질화되고 있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말이 비행이지 이들 청소년의 범죄는 그 유형과 수법이 성인범죄를 뺨칠 정도로 악질적이다.
지난 16일에는 포항에서 교사가 인솔한 고교생들의 야영양을 마을청년들이 습격,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구타하고 여고생을 폭행한 일이 일어났다.
또 그 며칠 전에는 공원에 놀러온 여고생 3명을 10대 청소년들이 협박, 집단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치안본부에 따르면 금년 들어 7월까지 발생한 강간 및 강간치사상 사건은 모두 2천 4백 7건에 이른다. 서울지역의 경우만 해도 한달 평균 1백 15건으로 그중 92%가 청소년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고 한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이들 청소년범죄의 특징은 충동적이고 유희적이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청소년 범죄는 대부분 2명 이상의 집단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여름철을 맞은 요즘은 또래끼리 어울려 다니다가 아무 데서나 놀이를 하듯 공공연하게 범행을 저지른다. 이처럼 대부분의 청소년범죄는 그들이 아무런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범죄를 놀이로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행하는 그 의식의 공백상태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많은 교육전문가나 정신과의사들은 이 같은 현상이 산업사회가 몰고 온 고질적인 병폐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경제일변도의 고도성장이 가져온 기성 세대의 불건전한 소비 행태가 결국 신성시 해야할 인간의 성마저 하나의 인스턴트 식품처럼 1회용 쾌락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청소년들 앞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는 각종 유해 환경이다. 매일 밤 방영되는 TV 드라마는 거의가 불륜이 주제가 되어있고, 쇼 프로라는 것도 대부분 과다한 노출과 이상한 몸짓으로 선정적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벌거벗기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디 그뿐인가. 학교주변의 성인만화가게와 전자오락실은 청소년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더구나 이들 가게에서 보여주는 불법비디오는 어떻게 다루어야하나.
지난해 공륜이 전국 14개 시·도의 고교생 3천 1백 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를 보면 총 응답자 3천 7백 38명중 97·3%인 3천 6백 36명이 비디오를 본 경험이 있다고 되었다.
그 비디오라는 게 대부분 불법 음란비디오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우리의 생활에 편의와 능률을 높여주고 때로는 즐거운 오락을 주는 「이기」가 이처럼 청소년의 의식을 좀먹는 「공해」로 역기능을 하는데도 당국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정책의 부재」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해결은 물론 간단하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날 만연된 성의 상품화를 막는 길은 우리 모두가 연구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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