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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서방은 바람피워도 돼!"···'주둥이 효자'에 속터진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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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47)

“김 서방은 바람피워도 돼!”

이거 몇 년 전 장모가 내게 해준 이야기다. 실화다. 웃으며 한 농담이지만 그만큼 당신 딸이나 처가에 하는 게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 짐작한다. 물론 아내는 “실상을 몰라서 그러지, 살아 보라지”라고 ‘저항’을 하지만 말이다.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가 말뚝에도 절한다 했던가. 시부모에게 잘하는 만큼 맏사위로서 외식이며 여행 등 나름 처가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내와 마트에 가서 맛난 것을 보면 내가 장인 장모 몫을 먼저 나서서 챙길 정도다. 오히려 30년 시집살이에 ‘며느리’ 의식이 더 충만해진 아내는 자기 부모를 챙길 생각을 미처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남부럽지 않게 장인 장모를 신경 써서 모신다고 자부하지만, 이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가 아니라 '도리'를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사진 pixabay]

남부럽지 않게 장인 장모를 신경 써서 모신다고 자부하지만, 이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가 아니라 '도리'를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사진 pixabay]

우리 부모에게야 말할 것도 없다. 능력이 못 미치니 남부럽지 않게 모시지 못하지만 남 못지않게 신경 써서 모신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이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가 아니라 ‘도리’를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뭐랄까, 내 마음 한구석에는 “1959년 시골에서, 부엌 하나 제대로 안 달린 셋방에 살면서, 장남이라고 유치원에 보낸 부모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 크게 작용한다.

그보다 큰 문제는 내가 하는 ‘효도’의 큰 몫은 아내가 지는 짐이라는 점이다. 30년 넘게 부모를 모시고 살 때도 나야 직장에 휙 가버리고 부모 수발은 아내 몫이었고 정년퇴직을 한 후에도 이런저런 일에 나는 입으로, 지갑으로 생색내고 정작 몸으로 때우는 건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 전 ‘주둥이 효자’란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덜컥했다. 주둥이, 사람의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당연히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를 일러 ‘주둥이를 놀린다’하고,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이를 낮춰 ‘주둥이만 살았다’고 하는 식이다.

말로 생색내고 아내에게 부담지우는 ‘얌체 효자’

이게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효자와 붙었으니 좋은 뜻일 리 없다. 말로만 온갖 생색 다 내고 실제 부담은 아내에게 지우는 ‘얌체 효자’를 가리키는 데 뉘 집에나 꼭 있고, 갈수록 는단다.

아내는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혼자 모시고 치매 검사를 받고 왔다. [중앙포토]

아내는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혼자 모시고 치매 검사를 받고 왔다. [중앙포토]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며칠 전 부모 두 분이 정기 치매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일이 있긴 했지만 하려고 들면 날짜를 바꿔 내가 모시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편하자고 꾀를 부렸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듯 그대로 출근했고, 아내가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모시고 다녀와야 했다. 들으니 점심까지 먹고 오느라 다섯 시간 넘게 걸렸는데 한 분이 검사받는 동안 아내는 다른 분 말 상대를 해야 했는데 이것도 일이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 아내가 슬그머니 한소리 했다. “여보, 우리는 저세상에서는 못 만날 것 같아.” 뜬금없는 소리에 내가 물었다. “왜?” 아내 답에 뼈가 들었다. “나는 천당 가고 당신은 지옥 갈 테니까.”

그러고 보니 ‘주둥이 효자’란 말을 아내에게 들었던 듯 싶은데?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http://pf.kakao.com/_xfxgQ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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