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핵 비용, 주한미군 등 한·미 간 깊숙한 조율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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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북 지원, 주한미군 문제 등 주요 사안에 대한 민감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을 비핵화하고 정상국가화하려면 마땅히 논의해야 할 사안들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우리 정부와의 조율 없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 입장만 반영되는 분위기여서 걱정스럽다.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대북 원조 관련 입장이 바로 그렇다. 그는 대북 지원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한국이 그것(원조)을 할 것이고 중국과 일본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6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그들(한·중·일)은 이웃 국가”라고 덧붙였다. 누가 봐도 북한 비핵화 비용을 한·중·일, 특히 우리에게 떠넘기겠다는 뜻이다.

동·서독 케이스를 기준으로 통일 후 북한 개발을 위해서는 10년간 2167조원이 든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규모라면 올해 예산 429조원인 한국 정부가 대북 지원의 대부분을 떠맡기엔 역부족이다. 중·일은 물론이고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와 미국·유럽연합(EU)의 전폭적인 공적 원조가 아쉬울 판이다. 그런데도 ‘미 정부 돈은 꿈도 꾸지 말라’고 트럼프부터 야박하게 굴면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나올지 불을 보듯 뻔하다.

주한미군 문제도 비슷하다.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31일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현시점에서는) 공개되지 말아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금 밝힐 수는 없지만 북·미 간에는 논의되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동맹의 이슈일 뿐 북한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과 딴판이다. 한국인의 생명이 걸린 주한미군 철수가 우리 머리 위에서 북·미 간에 논의된다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정부는 심각한 ‘코리아 패싱’이 없게 핵심 사안에 대해 한·미 간의 깊숙한 조율이 이뤄지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