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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의 앵그리2030]⑧어차피 선거는 어른들의 잔치…청년 정치가 불가능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열흘 뒤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릅니다. ‘정치가 좀 젊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분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이 한다고 젊은 정치인 건 아닙니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각 계층·성·연령이 가진 문제의식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인적 구성 역시 균형을 좀 맞추는 게 좋겠죠.

5월 30일 서울 중구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후보자 벽보용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5월 30일 서울 중구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후보자 벽보용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 정치는 불균형이 심합니다. 특히 연령별 비대칭은 심각합니다. 국내 인구 5179만명 중 20~30대 비중은 27.3%(1414만명)입니다. 그런데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20~30대는 단 3명(당선 시점 기준), 1%밖에 안 됩니다. 2명은 청년비례대표제를 통해 당내에서 ‘선발’된 경우고, 지역구에서 선거를 통해 당선된 건 단 1명뿐입니다.

인구 비중은 44.3%인 40~60대가 국회의원의 97.3%를 차지합니다. 사실 40대도 그리 많지 않고요. 당선 시점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55.5세, 임기 4년을 마치는 2020년이면 환갑에 근접합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방선거 땐 좀 다를까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 9122명의 연령을 분석해봤습니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는 20~30대는 단 5명. 전체의 7.6%입니다.

시군구 장 후보 중엔 20~30대 후보가 전체 1093명 중 7명(0.6%)뿐입니다.

20~30대에 돌풍을 일으킨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예전엔 젊은 정치 스타가 종종 탄생했습니다. 1988년 ‘소(小)선거구제’ 장벽이 세워진 이후 선거는 확실히 ‘어른들의 잔치가 됐습니다.

큰 선거구에서 2~3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와 달리 소선거구제는 1등을 한 1명만 당선됩니다. 김성식 의원이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역주의와 이념 대립으로 점철된 정치에서 소선거구제는 민생보다는 정쟁을 가속하는 기제로 전락한 지 오래다. 특정 지역, 특정 정당 싹쓸이는 해당 정당엔 기득권이지만 국민 주권 왜곡의 상징이다. 사표(死票)는 넘쳐나고, 국민의 다양한 이해와 성향은 대변되지 않는다.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천권으로부터 나오는 꼴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콩도르세의 역설’이란 게 있습니다. A·B·C 3명의 후보가 있고,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이 투표를 한다고 가정하죠.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를 1순위, 그다음은 2순위, 가장 싫은 사람을 3순위로 표기합니다.

RM·슈가·진은 A를 1순위로 꼽았습니다. 제이홉·지민은 B를, 뷔·정국은 C를 1순위로 꼽았습니다. 다수결에 따라 3표를 받은 A가 당선됐겠죠. 그런데 제이홉·지민·뷔·정국이 A에게 1점을 줬다면 어떻게 될까요? 방탄소년단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A,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A입니다. 다수결이 항상 민의를 반영하는 건 아닙니다.

1등만 뽑는 선거일수록 든든한 울타리가 중요합니다. 바로 ‘정당’이죠. 선거를 치르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사람 모으고, 정책 만들고, 홍보도 해야 하죠. 밥값만도 보통이 아닙니다.

정당에 속하면 이런 부담이 좀 줄어듭니다. 중앙당의 지원을 받으니까요. 지명도나 인지도 측면에서도 무소속이나 신생 정당보다는 기성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게 유리합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안 처리를 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안 처리를 하고 있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은 호남 37석 중 36석을 따냈습니다. 대구·경북은 민주정의당, 부산·경남은 통일민주당 차지였죠. 이후엔 양당 구도로 재편돼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휩쓰는 양상이 굳어졌습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대거 국회에 입성해 ‘제3당’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은 사멸했고, 국민의당은 분열과 합당을 거치며 위기에 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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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가 낳은 철저한 양당 구도 속에서 청년이 선거에 나설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기성 정당에 들어가 공천을 받는 방법뿐입니다. 구태라 욕하면서도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서고, 계파 정치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사실 공천이란 것도 지역 내 기반이 있는 사람, 당 공헌도가 높은 사람의 몫입니다. 돈과 시간을 써야 가능한 일인데, 돈도 시간도 여유라곤 없는 20~30대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청년들끼리 모여 정당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요? 시도한 적 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청년당이 기호 17번을 받고 선거에 뛰어들었죠.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20~30대가 주축이 됐는데 당시 화제를 모았던 ‘청춘콘서트’와 맞물려 제법 관심을 받았습니다. 현실 정치의 벽은 높았죠. 지역구 당선자는 없었고, 정당 지지율도 0.34%에 그쳤습니다.

‘인맥 좋고, 재산 있고, 나이 든 고학력 남성’의 전유물이 된 정치를 바꾸려면 선거제도 개편이 시급합니다.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게 그나마 간편한 방법인데 정치인들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지역구 의원을 줄여야 하니까요.

몇 년 전 선거관리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1로 조정하라는 권고안을 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의원 예비후보들이 5월 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6.13지방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의원 예비후보들이 5월 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6.13지방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 어려운 상황에도 도전하는 청춘들이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뜻있는 20~30대가 모여 ‘구의원 후보 출마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참여의 의미를 ‘투표’에서 ‘출마’로 확장했다는 점에 의미가 큽니다.

서울 금천구 구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곽승희(31)씨의 선거 구호는 ‘정치는 참견이 제맛’입니다.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그도 알지만, 생각은 분명합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큰 변화는 작은 움직임에서 출발하니까요. 이런 활동 자체가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거예요.”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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