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전쟁' 치르는 미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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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각 주가 장례식장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18일 보도했다.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의 장례식장을 동성애 반대를 위한 효과적인 시위터로 활용하면서부터다. 이들은 미군이 전사한 것은 동성애를 묵인하는 미국에 대해 신이 징벌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장례식장에 집단으로 나타나 "신이여, 미군을 죽여줘서 감사합니다"라는 피켓까지 동원한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프레드 펠프스 목사가 이끄는 이 근본주의 단체는 그간 게이들의 장례식장에서 집단 시위를 벌여오다 지난해 말부터 미군 전사자 장례식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엄숙해야 할 전사자 장례식장에서 시위가 빈발하자 최근 이들에 대항하는 단체도 생겨났다. 베트남 전쟁 참전자 출신의 오토바이족들이 조직한 '패트리엇 가이드 라이더'라는 단체가 그것이다. 이들은 장례식장에 인간 방벽을 쌓아 조문객과 시위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오토바이 엔진 소음을 이용해 시위대의 거북스런 구호가 들리지 않게 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이 단체의 회원은 현재 2만2000여명에 달한다. 전장에서 숨진 전사자의 장례식장마저 또다른 전쟁터가 된 셈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장례식장 인근 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도 곳곳에서 마련되고 있다. 오클라호마.위스콘신.인디애나 주 등에서는 이미 법안이 통과된 상태고, 23개 주에서 관련 법안이 준비되고 있다. 주로 장례식장에서 일정 거리 이내에서는 집회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장례식이 열리는 시간 동안 집회를 금지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그러자 펠프스 그룹측은"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행위"라며 집회 금지법안에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인디애나주 스티브 바이어 의원은 "그들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전사자의 가족에게도 장례식을 평화롭게 치를 권리가 있다"며 이를 반박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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