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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개편 ‘공론화’ 다시 도마 위…비전문가 400명이 결정하는 방식 여전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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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대입특위)가 31일 시민들이 논의할 대입개편의 쟁점을 공개하자, 공론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국가 교육의 미래를 좌우할 대입 개편안을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들이 결정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모양새다. 교육부에서 국가교육회의·대입특위·공론화위로 넘어가면서 안 그래도 ‘고차방정식’이라 불리는 대입 개편 논의가 더욱 복잡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론화는 개인의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와 달리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정책 결정에 앞서 정부에서 이해관계자·전문가·일반시민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과 숙의를 통해 여론을 형성해 가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대입 전형의 정시 비율 50%로 확대’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찬반 의견을 묻는 게 여론조사라면, 공론화는 일부 시민들이 대입 전형의 적정 비율 관련 자료를 학습·토론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모으는 식이다.

대입 개편 공론화 범위가 발표되자 공론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여한 학부모, 학생 모습. [연합뉴스]

대입 개편 공론화 범위가 발표되자 공론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여한 학부모, 학생 모습. [연합뉴스]

이런 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은 대입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과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학부모·교사·대학 관계자 등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와 정시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수능 절대평가 전환 여부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지난해 교육부가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려다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1년 유예한 게 좋은 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대입제도 개편을 단순히 몇몇 전문가가 맡는 것보다 이해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입특위에 따르면 대입개편과 관련해 시민들이 논의할 내용은 학생 선발 방식 간 비율(학생부 전형과 수능 전형 비율), 수시의 수능 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 수능 평가방법(수능 절대평가 확대) 등 세 가지다.

대입특위가 발표한 내용의 공론화는 6월 시작된다. 학생·학부모·교사·대학관계자 등 20~25명이 공론화 범위를 조합해 4~5가지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이 이뤄진다. 학생 선발방식, 수시의 수능 최저학력 활용 여부, 수능 평가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 선발 방식 비율은 대학 자율에 맡기고, 수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하고, 수능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게 하나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반면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비율을 50% 이상으로 늘리고, 수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유지하며, 수능을 현재와 같이 일부 과목(영어·한국사)만 절대평가로 치르는 모형도 나오는 게 가능하다.

대입개편 공론화위원장을 맡은 김영란 전 대법관. [연합뉴스]

대입개편 공론화위원장을 맡은 김영란 전 대법관. [연합뉴스]

이후 7월까지는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권역별 대국민 토론회, TV 토론회, 온라인 의견수렴 등이 추진된다. 이때는 직접 이해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취지로 '미래세대 토론회'를 별도로 개최해 이들의 의견을 최종 보고서에 담을 계획이다. 미래세대 토론회는 중·고교생 위주로 4차례 개최할 예정이다. 대입특위가 구성된 후 약 한 달간 대입개편 공론화 범위를 설정하기 위해 이뤄졌던 의견수렴 절차가 주최자만 바뀐 채 다시 반복되는 셈이다.

7월에는 대입 개편안을 결정할 시민참여단이 출범한다. 참여단은 선거권이 있는 19세 이상 국민 가운데 지역과 성별, 연령, 대입제도에 대한 의견 등을 고려해 400여명을 선정한다. 참여단은 대입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공론화 과정에서 나온 자료집을 학습하고 토론회 등을 거쳐 어떤 개편 시나리오를 찬성하는지 설문조사에 참여한다.

이 방식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이뤄졌던 신고리 원전 공론화 과정과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찬반여론이 거세자 공론화위를 운영해 의견을 수렴했다. 당시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을 선발한 뒤, 이들을 학습시키고 다시 숙의 과정을 거쳐 합의점을 도출했다. 신고리 원전 공론화는 ‘성공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대입은 신고리 원전보다 한층 복잡해 제대로 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신고리 5, 6호기는 ‘건설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문제라 시나리오가 없었지만, 대입개편은 다양한 변수를 조합해야 해 여러 개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시민참여단의 설문조사 결과 시나리오별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공론화 후 더 큰 혼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사립대의 한 교육학과 교수는 “대입개편 시나리오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의견이 비슷하게 나올 경우에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입 개편을 교육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결정한다는 것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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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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