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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歸省보고서] "욕할 기운조차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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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역주민들 만나기가 겁날 정도였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

추석 연휴에 지역구를 다닌 의원들은 민심 이반의 심각성을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IMF 때 못지않은 경제불황에다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 민주당의 폭력.분당 사태, 무기력한 한나라당과 내부의 물갈이 논쟁이 짜증과 염증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겹친 초특급 태풍과 흉작은 사상 최악의 추석 민심이란 평가를 낳게 하고 있다.

◇ "경제가 이꼴인데 싸움박질만 하나"=추석 민심의 화두는 아무래도 '경제'였다. 한나라당 김문수(부천 소사)의원은 "취직도, 장사도 안되고 경기도 바닥이어서 정치를 욕할 기력조차 없는데 비까지 쏟아지니 하늘마저 안돕는다고 하더라"고 바닥 민심을 전했다.

민주당 이훈평(관악갑)의원은 "목포에 가보니 번화가 점포들도 문을 닫고 있더라. 이런 적은 없었다며 민심이 흉흉했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성호(강서을)의원도 "재래시장에 가보니 과일이든 옷이든 지난해 절반밖에 안팔렸다고 아우성이었다"고 했다.

농심(農心)도 최악이었다. 한나라당 신경식(청원)의원은 "8년 풍년 이후 첫 흉작에 정치권은 싸움박질만 한다며 원성이 자자했다"고 했고, 민주당 김경천(광주 동구)의원은 "쌀독에 민심 난다고, 농사라도 잘됐으면 민심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盧대통령 평가 부정적=경기침체에 대한 불만에 盧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졌다는 지적들이 주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盧대통령이 제대로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많았다"(정의화 의원, 부산 중.동) "주민들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은 것 같다"(윤경식 의원, 청주 흥덕)고 주장했다.

민주당 조순형(강북을)의원은 "신중치 못한 언행이 여전히 화제였다"고 했고, 수도권의 한 386 의원은 "지역활동 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며 盧대통령의 인기가 없음을 시인했다. 반면 임종석(성동)의원은 "초기보다는 걱정이 많이 줄었으며, 경제만 살아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신당 반응은 엇갈려=당과 지역.세대, 의원 성향에 따라 평가와 해석이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당 사수파는 "호남의 경우 왜 한데 뭉쳐 한나라당을 이기려 하지 않고 갈라지려고만 하느냐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강운태 의원.광주 남구) "신당파에 대한 괘씸함과 盧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뒤섞여 민심이 썰렁했다"(김경천 의원)고 주장한 반면, 신당파는 "20~40대는 신당 지지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50대 이상은 6대4 정도로 민주당 지지가 많아 종합해 보면 신당쪽이 우세했다"(김태홍 의원.광주 북을)고 분석했다.

영남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당을 누가 찍겠나"(박승국 의원.대구 북갑)라며 평가절하한 데 비해 민주당의 수도권과 충청권의 신당 측 의원들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여론이 양호해 해볼 만하다고 판단됐다"(김성호 의원)며 자신감을 보였다.

◇ "야당도 물갈이해야"=한나라당도 질타를 받았다. "도대체 야당은 뭐하고 있느냐는 꾸지람이 많았다"(윤경식 의원)는 전언이다. 물갈이에 대해 남경필(수원 팔달)의원은 "젊은층은 물론 나이 많은 분들도 5,6공 용퇴론에 대부분 찬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경식 의원은 "야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당선 위주로 공천을 해야지, 나이.경력을 따지다 보면 여당에 진다는 우려가 많았다"고 반박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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