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너무 까다로워 불임부부 두 번 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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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지난달 "저출산을 막기 위해 불임부부에 대해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가뭄 끝의 단비처럼 반가웠다. 하지만 기쁨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월소득 242만원 이하여서 신청자격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저소득층부터 돕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정부 기준으론 실제 불임으로 고통받는 대다수 부부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 돈 준다는데도 신청 미달=보건복지부는 올해 1만6000쌍의 불임부부에 대해 시험관아기 시술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도 465억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10월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서 벗어나자"며 발표한 저출산 대책이다.

불임 지원 신청은 지난달 6일부터 시작됐다. 마감은 앞으로 열흘(28일) 남았다. 그러나 신청자는 지난달 31일까지 3500쌍에 그쳤다. 지원금을 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할 줄 알았는데 신청률이 20%대에 머무른 것이다.

이유는 기준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불임시술 지원 대상을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의 80% 이하(2인 가족 기준 242만원)로 제한했다. 부인의 나이도 44세 이하여야 한다. 나이나 불임 기간에 따라 점수를 매겨 대상자를 선정한다. 이런 복잡한 기준 때문에 불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맞벌이 중산층 부부들이 대거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에서도 지원이 별로 없었다. 정부는 시험관아기 평균시술비 300만원의 절반인 150만원을 1년 동안 최대 두 번에 걸쳐 지원한다. 나머지 추가비용은 각자가 부담해야 한다. 저소득층에게는 추가비용도 부담이 만만치 않아 포기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중산층이나 저소득층 어디에도 실질적 도움은 안 되는 출산장려 정책이 된 것이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득을 기준으로 불임 지원 대상을 정하는 건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이라며 "저출산은 오히려 중산층에 초점을 맞추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런 정책 어떻게 나왔나=불임부부 지원은 2004년 9월 열린우리당의 '저출산 고령사회 태스크포스팀'에서 검토하기 시작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래는 지원대상을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60% 이하로 제한하려고 하다 올 초에는 100%까지 지원하는 쪽으로 수정했었다"고 주장했다. 지원을 저소득층에 한정하면 중산층이 빠져 신청률이 낮아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획예산처는 "지원대상을 일단 근로가구 평균소득의 80% 이하 정도로 제한하고 상황을 지켜보며 대상자를 확대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당시는 건설교통부의 '생애 첫 주택자금 대출'이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던 때였다. 신청이 폭주했는데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 따라 '평균소득 80% 이하 가구에 시험관아기 시술 지원' 정책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번엔 주택자금 대출 때와는 정반대로 신청자가 부족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래저래 탁상행정이었던 셈이다. 복지부는 지원 계획을 확정하면서 불임부부에 대한 자체 실태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불임단체의 설문조사를 참고하는 정도로 대신했다. 실태조사조차 정확하지 않았으니 수요 예측이 허술한 건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도 이른 시일 내에 소득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신청기간이 남아 있지만 신청자가 계획에 미달하면 소득기준을 확대하거나 신청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철근.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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