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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개각에 앞서 장관에게 힘부터 실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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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다음달 지방선거 후 개각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 1년의 국정을 따져보면 개각의 필요성에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각을 하면 뭐 하나 하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인사에 비춰볼 때 신임 장관이래 봐야 어차피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력 풀에서 벗어나지 않을 텐데, 공연히 인사청문회니 뭐니 하면서 국가 에너지만 낭비할 게 뻔한 까닭이다.

그보다 더한 건 내각의 존재감이 전혀 없고, 오로지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만 보이는 상황에서, 장관을 바꾼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 총리는 “지난 1년 동안 개각이 없었다는 게 인사가 잘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장관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는 사실일 것이다.

실제로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사이 북·미 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과정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도대체 어디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을 때 김은경 장관의 환경부는 우왕좌왕하기만 했고, ‘미투’가 확산될 때도 정현백 장관의 여성가족부 역시 꿀 먹은 벙어리였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입시제도에 온갖 혼선을 초래함으로써 존재감을 과시했다.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 체제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개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개각을 하려면 장관에게 힘을 실어줘 국정운영을 주도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이를 뒷받침하면 그만이다. 특히 잘못된 판단임이 증명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개선을 위해서라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 컨트롤타워가 되고 관련부처 장관들이 국정의 한 축이 될 수 있는 개각이 이뤄져야 한다. 정책 전환이 아니라 청와대와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장관을 찾는다면 굳이 개각을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