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영어 강의 걸음마 단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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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글로벌 존에서 여학생들이 원어민 교수들과 함께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승식 기자

4일 낮 12시 한양대 안산캠퍼스 제2공학관 교수회의실. 건축학부 교수 9명이 건축올림피아드 준비 문제를 논의했다. 참석자는 모두 한국인인데 회의는 영어로 진행됐다. 교수의 영어 강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다. 이 학교 건축학부는 2003년 싱가포르 국립대와 '국제 공동 강의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영어 강의를 본격화했다. 매 2학기에 싱가포르 국립대 학생 10명(3학년)이 방문해 공부함에 따라 3학년 전공과목 8개를 모두 영어로 진행한다. 같은 기간에 한양대 학생 20명(2, 3학년)은 싱가포르에 가서 공부한다.

국내 대학들도 영어 교육을 위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영어 강좌를 늘리는가 하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주력하는 대학도 있다.

고려대 어윤대 총장은 2003년 초 취임 일성으로 "앞으로 영어 강의가 불가능한 사람은 우리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영어 실력을 갖춘 글로벌 리더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영어 강좌가 필수라는 취지였다. 고려대는 현재 30%인 영어 강좌 비율을 2010년까지 60%로 확대할 계획이다. 같은 시점에 연세대도 영어 강좌 비율을 50%, 성균관대는 3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대학의 영어 강좌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교수는 "영문과나 영어교육과에서조차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 '실용 영어는 학원에 가서 배워라'며 영어 강의를 외면하는 교수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칭화대(淸華大)의 영어 관련 학과 교과목 중 실용영어(통.번역 포함)는 12개(52%)로 절반이 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영어로 하는 강의다. 국내 대학 영어 관련 학과들의 실용영어 과목 비율은 평균 20% 남짓이다. 서울대 이병민 교수는 "중국 대학 졸업자들의 영어 구사력이 높은 것은 실용영어를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올 3월 학부의 모든 강좌를 영어로 진행하는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를 만들었다. 모종린 학장은 "32%에 불과한 외국인 학생 비율을 내년에는 50%로 끌어올릴 예정"이라며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강의의 질을 업그레이드하고 해외홍보 강화, 특별장학제도 마련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모 학장은 "국제화를 통해 대학이 먼저 캠퍼스 안에서라도 영어 공용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양대 이기정 국제어학원장은 "유학생이 한 명 들어오면 우리 학생이 15명 해외로 나가는 국제화 효과가 있다"며 외국 학생 유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외국인 학생들은 국내 학생들이 영어에 친숙해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순천향대 김영주(생명과학 3)씨는 교내 기숙사인 'English Village'에서 6학기째 지내고 있다. 김씨는 "영어 기숙사 생활 덕분에 지난 여름방학 하와이 어학연수 때도 현지인과 두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김인식 교수는 "대학 내의 기숙사를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Language House'와 같은 영어 전용 공간을 확대하는 것도 대학 국제화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김남중.고정애(스웨덴.핀란드).이원진(말레이시아) 기자, 상하이=유광종 특파원,

파리=박경덕 특파원, 도쿄=이승녕 기자 <social@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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