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천수이볜 따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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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대만 대표단에게 환영인사를 하자 대만의 롄잔 국민당 명예주석이 손뼉을 치고 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중국이 경제협력과 교류증진을 앞세워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을 압박하고 있다. 협상 파트너는 대만 야당이다. 독립을 외치는 천 총통을 무력화하기 위한 우회 작전이다. 천 총통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미를 앞둔 기만 전술"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국공(國共)합작으로 천 총통 왕따시키기=14일부터 이틀간 베이징(北京)에서 제1차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경제.무역 논단이 열렸다. 양안 간 사람과 재화의 교류를 늘리는 방법을 찾자는 모임이었다. 대만 정부와 집권 민진당을 제외한 양안의 정치.경제.학술 대표들이 만났다. 주인공은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 후 주석은 대만에 대한 '15개 우대조치'로 롄 주석의 방중에 화답했다. 앞으로 대만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책이다.

◆ 경제협력이라는 새로운 무기=대만이 독립을 외칠 경우 중국은 군사위협과 경제제재로 맞섰다. 대만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거나 대상(臺商.중국 본토에 투자한 대만 기업인)에 대한 세무조사.영업허가 취소.추방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때마다 대만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채찍이 아닌 당근을 빼들었다. 농.수산물에 대한 우대조치는 대만 농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지난해에만 322만 달러어치의 대만 과일이 본토에서 소비됐다. 대만의 학력을 인정하고 본토에서 취업하거나 개업을 허용한 것도 대만인에겐 희소식이다. 중국은 대만 야당 대표와 만나 이런 당근을 내놓았다. 노골적인 '천수이볜 정권 따돌리기'다.

현재 양안 간 항공기 직항은 금지돼 있다. 교류에 결정적인 장애다. 대만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다. 대만은 농업기술의 대륙 이전이나 중국 금융회사의 진출도 불허하고 있다. 중국의 투자 가능 업종도 100개로 제한하고 중국 관광객도 하루 1000명으로 묶어놓은 상태다.

이번 논단에 참석한 한 대만 기업인은 "지난해 중국은 대만에 164억5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746억8000만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그런데도 대만 당국은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 대만 과일도 제3국을 돌아 6일은 지나야 본토에 닿을 수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논단에 참석했던 다이성퉁(戴勝通) 대만 총통 자문관은 "제3국 경유로 생기는 추가 부담은 오히려 작은 일이다. 시간 지체로 인한 경제적 기회의 박탈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펑즈(朱鳳芝) 국민당 대표는 "개방과 교류를 요구하는 대만 경제인들의 목소리가 앞으로 천 총통을 더욱 압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대만 정부는 여전히 냉담=천 총통은 14일 "롄 주석과 후 주석의 만남은 중국 정권의 악의적 의도를 숨기기 위한 포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이 대만을 적대시하고 있다는 미국의 비난을 감안해 후 주석의 방미(18일)를 앞두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천 총통은 13일 총통부 건물에 대한 중국의 기습공격을 가상한 비상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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