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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이승우의 목표는 ‘번쩍’ 아닌 ‘롱런’

중앙일보

입력

온두라스와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경기 장소인 대구스타디움에서 몸을 푸는 이승우. [뉴스1]

온두라스와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경기 장소인 대구스타디움에서 몸을 푸는 이승우. [뉴스1]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멋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죠. 그런데 지금은 A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걸 증명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20세 이하 대표팀 때와 비교하면 목표 자체가 다른 거죠. 그래서 훈련장 안과 밖에서 형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요. 장점들을 하루 빨리 제 것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지난 24일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기자와 만난 이승우(20ㆍ헬라스베로나)는 처음 경험하는 축구대표팀 생활의 가장 큰 화두로 ‘증명’을 꼽았다. 러시아월드컵 예비엔트리 중 최연소(1998년 1월생) 선수지만, ‘언젠가 다음에’가 아닌 ‘지금 당장’ 대표팀 공격진에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이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축구대표팀 훈련 중 이승우(가운데)가 손흥민(왼쪽), 황희찬 등 동료 선수들과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대표팀 훈련 중 이승우(가운데)가 손흥민(왼쪽), 황희찬 등 동료 선수들과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소집훈련이 거듭되는 동안 선수의 표정 변화에서 대표팀 적응의 단계를 읽을 수 있었다. 당차기로 소문난 이승우지만, 소집 초기엔 내로라하는 대선배들 틈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함께 지켜보는 기자들이 “이렇게 군기가 바짝 든 이승우는 처음 본다”며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손흥민(26ㆍ토트넘) 등 선배들의 애정어린 장난에 연신 그라운드에 나뒹굴면서도 활짝 웃지 못했다.

역시나 경험이 약이었다. 이승우는 빠르게 대표팀 분위기에 적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유의 눈빛도 살아났다. 생존 경쟁에 열심히 참여하면서도 훈련장 분위기를 밝게 하는 ‘막내’의 역할을 틈틈히 소화하려 애쓰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승우는 “월드컵 본선이라는 큰 무대를 앞두고 형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이 난다”고 설명했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는 동안 이승우는 늘 주인공이었다. 16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17세 이하 월드컵, 19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20세 이하 월드컵 등 참가한 대회마다 에이스이자 간판스타 역할을 맡았다. 팀을 대표하는 얼굴이면서, 승부처에서는 해결사로 나서야 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이승우는 언제나 주인공이자 해결사였다. 20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한 이승우. 중앙포토

연령별 대표팀에서 이승우는 언제나 주인공이자 해결사였다. 20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한 이승우. 중앙포토

A대표팀에서는 다르다. 아직까지는 도전자이면서 조력자다. 손흥민, 이청용(30ㆍ크리스탈팰리스), 이재성(26ㆍ전북) 등 먼저 대표팀에 자리 잡은 선배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장점을 흡수하면 된다. 여전히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 있지만, 어깨는 한결 가볍다. 이승우가 A대표팀 도전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유다.

‘신태용호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를 물었더니 이승우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이청용을 꼽았다. “간결하고 영리하게 볼을 찰 뿐만 아니라 몸도 가볍다. 배울 점이 많은 선배”라고 설명했다. ‘이청용이 대표팀에 뽑힌 것을 두고 찬반 양론이 거세다’고 한 마디 던졌더니 “나는 본대로 말 할 뿐이다. 청용이 형 컨디션이 정말 좋다. A매치에서 함께 뛸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거듭 기대감을 나타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대표팀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최대한 오래 몸담고 싶다”는 선수의 각오를 듣고 흐뭇했다. ‘하루 빨리 A매치 데뷔골을 넣고 멋진 세리머니를 보여주고 싶다’ 정도의 발언을 기대했는데, 이승우의 생각은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지난 2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출정식에서 이승우(오른쪽)가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출정식에서 이승우(오른쪽)가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태극마크’에 대한 이승우의 집념은 유별나다. 전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스페인)에 몸담던 시절 스페인축구협회의 귀화 제의를 단칼에 거절한 이유도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본선을 누비고 싶어서였다.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전 세계 축구 유망주들과 경쟁할 때도 ‘나는 바르셀로나의 대한민국 대표’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한다. 이승우의 측근은 “(이)승우가 스페인축구협회의 제의를 받아들여 유럽연합(EU) 시민권을 얻었다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외국인 쿼터(1부리그의 경우 팀 당 세 명) 적용을 받지 않게 돼 한결 수월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축구대표팀 멤버가 되길 바라는 승우의 고집을 누구도 꺾지 못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월드컵은 축구선수 이승우의 꿈을 실현하는 무대인 동시에 ‘태극마크를 달고 롱런한다’는 더 큰 목표의 출발점이다. 러시아행에 도전하는 이승우의 발걸음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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