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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해외시장 "강 건너 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세계 30여개국에서 매년 30회 이상 열리고 있는 국제도서전시회에 대한 국내출판인들의 인식이 우리 출판계의 덩치에 비해 너무나 낮다.
「고급출판정보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국제도서전시회는 세계 각 국이 저마다의 편집·인쇄·제본테크닉을 자랑, 판권계약 등 도서의 수·출입상담이 이뤄지는 「견본시장」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책을 통해 각 국의 문화수준을 경연하는 「문화올림픽」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10월 국제저작권협약(UCC)에 가입하면서 국제출판질서에 떳떳이 편입되었고 또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서울올림픽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음을 감안해볼 때 우리출판계의 세계시장에 대한 인식미흡은 안타까울 정도다.
내달 1일부터 7일까지 열리기로 예정돼있는 「중국북경 국제도서전」에 한국이「몰라서」참가조차 못하는 것은 이러한 사정의 단적인 예. 출판문화협회관계자에 따르면 2년마다 열리는 북경국제도서전의 올해 개최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지난달에야 개최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참가가능성을 타진해 보았지만 이미 참가국 선정 등 제반사항이 끝난 뒤였다는 것. 할 수 없이 12명 정도의 삼관신청을 해놓았지만 입국수속 등 시일이 너무 촉박해 이 또한 불투명한 상태다. 같은 문화권인 우리로서는 차려 논 잔칫상조차 못 찾아 먹은 셈이 됐다.
또 오는 10월초 열리는 세계최대규모·최고권위의「서독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은 한국관면적으로 겨우 11평 정도를 차지했다. 이 면적은 일본의 암파나 강담사 등 1개 출판사 독립관 면적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나마 주최측과 씨름씨름 끝에 확보한 면적이어서 우리 출판외교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짐작케 해주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나 「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등 유명 도서전에는 한국이 작은 규모나마 대표단을 파견하고 수출상담을 성사시키는 등 나름대로 활동을 하고있다.
그러나 제3세계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또 다르다. 지난 3월과 5월에 각각 열린 멕시코도서전이나 인도뉴델리도서전의 경우 출품도서만 현지로 보내놓고 현지에서의 전시안내·수출입 상담 등을 출판전문인도 아닌 현지공관의 공보관에게 맡겼다.
그리고 이집트의「카이로전」 브라질의「상파울루전」 아르헨티나의「부에노스아이레스전」등 꽤 괜찮은 도서전으로 알려진 제3세계의 도서전에는 아직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을 정도다.
이처럼 국내출판계가 국제도서전에 소홀함으로써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기회와 우리 출판물의 세계시장 진출기회를 스스로 제약하는 현실에 대해 출판인들은 「내놓을만한 상품이 부족하다」는 소극적 발상을 하고 있다.
출판인들은 불·독·스페인어 등 해외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로 번역된 책의 발행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 언어와 큰 상관이 없는 그림책·사진집 등을 출품하려 해보지만 이 또한 발행비용이 비싸다는 이유로 출판사들이 기피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해마다 미국 각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고 있는 「동양학연구협회 도서전」(올해는 지난3월25일서 27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에 참가하고 돌아온 출판인 송순현씨(정신세계사 대표)는 『이 전시회에서 한국대표단이 한 일은 솔직히 도서전시대 설치와 전시도서 판매 뿐이었다』고 밝히고 앞으로의 국제도서전의 참가방향에 대해 『한국을 올바로 알게 하는 출판물의 소개와 함께 그들이 알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출판물을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인식제고와 우리출판에 대한 수요창출을 이루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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