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밀리터리룩'으로 갈아입은 박근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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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등록금 반으로 줄이기'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오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선 14일 찬바람이 일었다.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김덕룡.박성범 두 의원에 대한 공천비리 수사를 검찰에 의뢰한 지 이틀이 지났다. 박 대표는 "물러설 수 없다"는 결의를 내비쳤다. 그는 공천비리에 대한 강경 대처와 관련,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분명한 것은 잘못이 있으면 언제든 깨끗이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제 뭘 망설이겠느냐"=박 대표는 이날 인천지역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을 순회하는 정책투어의 일환이다. 박 대표는 '밀리터리 룩'(군복풍) 옷 차림이었다.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을 이끌 때 즐겨 입던 스타일이다.

박 대표는 전날 밤 김재원 클린공천감찰단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김 단장은 김.박 두 의원에 대한 수사의뢰서를 검찰에 접수한 뒤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청송에 머물고 있다. 그는 서울을 떠나기 전 박 대표에게 "남에게 못할 짓만 하는 것 같아 힘이 든다"며 단장직 사의를 밝혔다.

박 대표는 김 단장에게 "여기서 그만두면 사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천비리 척결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박 대표 주변에선 긴장감이 느껴졌다. 유정복 비서실장은 "당이 욕을 먹어도 공천문화를 개혁하겠다는 박 대표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김덕룡 같은 중진도 수사를 의뢰했는데 이제 뭘 망설이겠느냐"고 말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당도 비판이 쏟아질 것을 예상했다"면서 "설사 문제되는 한나라당 의원이 더 나와 의석이 반으로 줄어도 반드시 해내겠다"고 했다.

◆ "국민만을 보고 간다"=5선 중진인 김덕룡 의원은 당내에서 '마지막 계보 정치인'으로 통했다. 의원들을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김 의원은 최근 정책투어 때마다 박 대표를 수행했다. 사석에선 7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박 대표 쪽에 서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표 대결을 벌여야 하는 박 대표가 그를 잃는 것은 고통스러운 손실이다. 박 대표로서는 이 문제로 이 시장 측으로부터 공격당할 수도 있다.

박성범 의원은 서울시당 위원장이다.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다. 박 의원은 파문 직후 '지도부'를 비난하며 탈당했다. 이래저래 박 대표에겐 '악재'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거듭 '일벌백계는 국민과의 약속'임을 강조하고 있다. 측근들은 "국민만을 보고 간다"는 원칙론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대표로 선출된 2004년 3월 임시 전당대회 후보 연설에서 "'신(臣)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다"고 토로했었다. 한 측근은 "박 대표는 지금 '사즉생(死卽生.죽기를 각오하면 산다)'이라는 충무공의 심경 그대로"라고 말했다. 더구나 한나라당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공천비리가 추가로 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당내 갈등은 진정 분위기=전날 지도부 비판론을 제기하는 듯했던 소장파 의원들은 이날 박 대표를 지지했다. 수요모임 회장인 박형준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한국 정당사상 최초로 당내 사건을 검찰에 자발적으로 고발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뭉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푸른모임 대표 임태희 의원은 "당 일각에서 나오는 지도부 책임론은 당의 어려움만 가중시킬 뿐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자제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당의 클린공천감찰단에 접수된 의혹에 대해선 당사자들이 자진해서 조사받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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