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은 위험한 모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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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3일 이탈리아 로마의 라테란 성요한 대성당에서 평신도 12명의 발을 씻기는 '세족례'의식을 하고 있다. [로마 로이터=연합뉴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 금요일(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당한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날. 수난일)인 14일 유전자 조작 기술의 진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교황은 이날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주재한 '십자가의 길' 행사에서 유전과학 분야를 "신이 계획하고 뜻하신 생명의 원리를 고치려는 움직임"으로 규정하고 엄중히 비난했다.

교황은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 같은 시도는 위험하기 짝이 없고 광적인 모험"이라며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내용으로 기도를 올렸다.

교황은 또 "사회가 가정 파괴를 목적으로 한 '악마적 자존심'으로 가득하며 반(反)창세기적 현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진단하고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결함'을 씻어내고 사회가 '퇴폐적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정화되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더 타임스는 교황의 이 같은 기도 내용이 아주 강한 톤이라고 평가하고 종교계에서 무거운 주제를 피하는 최근의 추세와도 구별된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가톨릭 교회가 인간의 죄와 어두운 본성 쪽에 다시 무게를 두는 것은 과거로의 후퇴라고 우려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베네딕토 16세에게 기대한 강력하고 보수적인 리더십의 표출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교황은 이에 앞서 성 목요일인 13일 라테란 성요한 대성당에서 평신도 12명의 발을 씻기는 '세족례'의식에 참여했다. 이 의식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시작하기에 앞서 열두 제자의 발을 씻겨 준 데서 유래했다. 베네딕토 16세는 과거 교황이 성직자들의 발을 씻겼던 전통에서 벗어나 평신도들에게 세족례를 베풀었다. 이는 가톨릭 교회에서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올해 교황으로서 첫 부활절 행사를 집전했다. 지난해 부활절을 일주일 지난 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했으며, 그 뒤 4월 19일 베네딕토 16세가 265대 교황에 선출됐다.

박현영 기자

◆ '십자가의 길' 행사 = 예수가 로마 총독에게서 사형을 선고받은 것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못 박힌 뒤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과정을 14개 단계로 재현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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