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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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율화, 민주화시대를 맞아 검찰도 새 모습을 갖추어야한다는 요구들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야당 일각에서 『제5공화국 때 문제검사의 사퇴』를 주장한데 이어 검찰 내부에서도 정치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검찰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다짐과 자체 반성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검 공안부가 지난 1∼3일 개최했던 전국 공안검사 세미나에서는 지난날 검찰이 일부 시국 사건에서 독자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정치권력에 이끌려 검찰권 행사가 흔들렸었다고 평가, 『정도를 걷는 검찰권 확립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사실 민주당이 특별성명에서 5공 때의 검찰을 독재군사정권의 「법무 참모」운운한 지적과 검찰 스스로의 자기평가가 없더라도 국민이 지금까지의 검찰을 어떻게 보아왔고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던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박종철 사건과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 보였던 무력화한 검찰상이 그러했고, 농성자 전원을 무차별 구속했던 건국대 사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같은 대표적 시국 사건 외에도 권력형 부정사건 수사에서 보인 검찰의 태도는 검찰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공안국 검사 세미나에서 『검사들이 영장을 청구할 때 판사에게 구걸하다시피 했다』는 강도 높은 자성의 소리가 나온 것만으로도 이를 익히 알 수 있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권력에 흔들림으로써 그 폐해는 검찰의 불신에 그치지 않고 법과 형사사법제도 자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법과 형사사법제도가 국민으로부터 신인을 받지 못하고 외면 당할 때 그 사회는 기반이 흔들리고 라오스 상태나 다름없게 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공직자가 어느 한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봉사자로서 어느 정치적 특수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법적 의무를 다하고 공평성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정의 공평무사, 공권의 중립성이 민주정치 확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귀속된,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그 행사자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권력의 도구로 전락된다면 민주주의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요구나 이번 검찰의 자체 몸부림은 의미가 크고 어떤 형태로든 수용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정부도 자율화, 민주화를 추진하고 사법부 역시 대법원 수뇌진을 대폭 개편해 시대흐름에 궤를 같이하는데 준 사법기관인 검찰만이 가만히 있다면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권의 만년 시녀노릇을 해오던 경찰까지 중립화를 위해 체제개편을 서두르고 있지 않는가.
경찰이 공안위원회를 설치하려는 것과 같이 검찰도 검찰총장 임기제 등 제도적 개선을 통해 검찰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중립화하는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검찰의 독립은 검사의 신분 보장과 공정한 인사가 선결 조건이다.
지금처럼 상명하복이 강하게 요구되고 검사가 한낱 기계처럼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체제에서는 검찰의 독립은 요원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검찰인사위원회 운영의 개선도 뒤따라야 하고 검사 개개인의 의식개혁도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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