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41억 로비자금 써 550억 탕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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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기관까지 움직여=회계법인 근무를 발판으로 요로의 인맥을 두루 꿰고 있던 김동훈씨는 2001년 7월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현대차 기획본부장 김모씨에게서 로비 청탁을 받았다.

검찰이 찾아낸 그의 첫 로비는 기아차 부품공급 업체인 아주금속공업(현 메티아)에 대한 채권을 비롯해 300억원의 은행 채권을 조정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때 로비자금 1억5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이어 위아(옛 기아중공업)의 채권 등 모두 2000억원 상당에 대해 채무조정 부탁을 받고 2002년 6월까지 14회에 걸쳐 41억6000만원을 받았다.

이 같은 채무조정은 산업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과 정부투자기관인 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다. 김씨의 로비대상이 산업은행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금융감독 당국도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로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경로를 추적하고 있으며 이르면 다음주부터 산업은행과 관련 기관의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현대차가 김씨에게 41억원의 로비자금을 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현대차의 비자금 규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김씨의 로비자금은 현대차의 비자금 130억원과 별개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비자금만도 170억원을 넘는다는 의미다.

◆ 대담한 공적자금 빼먹기=현대.기아차그룹의 계열사나 부품사의 채권은 신용이 보장되고, 그중에서도 담보부 채권은 상환이 확실하므로 할인 매각이나 채무조정을 해줄 필요가 없는데도 약 550억원의 채무탕감이 이뤄졌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또 산업은행이 갖고 있던 위아의 담보부채권 1000억원은 이미 자산담보부증권(ABS)이 만들어져 시중에 유통된 상태인데도, 캠코는 이 ABS를 해체해 다시 산업은행에 매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 김동훈은=김씨가 정부투자기관을 움직일 만큼 막강한 로비력을 보였지만 막상 회계법인 관계자들은 의외의 인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김씨는 안건회계법인의 법적 대표가 아닌데도 '대표'라는 직함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국내 회계법인에서는 회계사들이 개별적으로 일감을 따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동호.최준호 기자

"550억 채무조정은 결국 국민 부담"
영장에 나타난 범죄 사실

◆ 범죄 사실=김씨는 2001년 7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현대차 기획본부장 김모씨로부터 금융감독 당국과 국책은행, 정부투자기관, 일반 금융기관 등의 경영진과 고위인사에게 청탁해 기아차 부품 공급업체인 아주금속(주)의 산업은행 담보부 채무 175억원 등 담보.무담보 채무 300억원의 채무조정을 받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억5000만원을 받았다. 김씨는 또 2002년 2월 A회계법인 지하주차장에서 현대차 계열사인 위아의 재경담당 임원인 한모씨에게 금융계 인맥을 동원, 위아의 담보.무담보 채무 2000억원을 탕감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뒤 3억5000만원을 받는 등 모두 14차례에 걸쳐 41억6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 구속 필요 사유=현대차 계열사의 담보부 채권은 상환이 확실시돼 할인매각이나 채무조정을 해줄 필요가 없는데도 김씨는 실제 채권매각 기준으로 550억원의 채무탕감을 해줬다. 이는 김씨가 자신의 금융계 인맥을 통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액의 채무조정은 결국 국민의 조세부담을 초래하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김씨의 부정한 거래는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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