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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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익살맞은 칼럼으로 이름난 미국의 「아트·부크월드」는 이런 글을 쓴 일이 있었다.
『…「키신저」미국무장관이 멀지않아 워싱턴을 방문한다는 소문으로 미국 수도는 흥분에 싸여있다. 그가 정말 워싱턴을 들르게 되면 상호 관심사를 놓고 「포드」대통령과 잠시 면담할 기회를 갖게될 것이다. 그후 그는 국무성을 방문하게 될텐데 정부는 국무성 직원들이 「키신저」를 구경할 수 있도록 그 날을 반공일로 선포할 것 같다.
그때가 청년, 「키신저」는 중동하늘을 날아다니며 「셔틀외교」에 정신없을 무렵이다. 「키신저」는 그래도 중동평화라는 큰일이나 했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요즘 무슨 일로 외국을 뻔질나게 오가는지 모르는데 뚱딴지같은 발언으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무성을 다녀나온 어느 국회의원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설을 터뜨리더니, 또 어떤 의원은 민정·평민당의 연정설을 발설해 『무슨 소리인가』귀를 놀라게 했었다.
요즘은 미국과 필리핀을 방문중인 공화당총재와 민정당대표가 똑같이 입을 모아 내각제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 국민들을 또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그 주장이 어떻다는 얘기는 나중일이고, 도대체 그런 요상한 문제를 하필 해외에 나가 벼르고 별렀다는 듯이 발설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우리국민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보고 얘기하기는 뭣하다는 말인가.
어쩌면 애드벌룬을 한번 띄워 올려서 국민들의 눈치를 살펴보자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를 하려면 그런 술수도 있어야한다. 그러나 맑고 푸르고 멀쩡한 조국하늘은 제쳐놓고 남의 나라 하늘아래 가서 애드벌룬을 올리는 심사는 이해하기 어렵다. 설마 우리나라 하늘 아래서는 얼굴들고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뜻인가.
국내의 위정자들도 그런 버릇을 가진 무리들이 있다. 엄연히 우리 가까이의 문제들, 때로는 다급한 현안의 문제들을 놓고 외국기자들에게 보란듯이 귀띔을 해주고 국내신문들은 허겁지겁 그것을 베껴야하는 수모를 당하게 한다.
그 심리가 궁금하다. 필경은 외국언론이 자기 말을 인용해 주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천격(천격)심리 아니면, 자기과시 심리가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국민은 공연히 그런 심리에 휘말려 머리만 산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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