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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나는 마윈…시민단체에 발 묶인 한국 '금융 빅데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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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의 인터넷 전문은행 마이뱅크(網商銀行)의 주요 고객은 농민과 소규모 자영업자다. 2015년 출범 이후 올 1월까지 대출받은 고객만 700만명이 넘는다. 이전에 이들은 신용 정보가 없어 시중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빅데이터가 경쟁력이다 (하)] #마윈 출자한 인터넷 은행 '마이뱅크' #통신비납부 정보 등 신용평가에 반영 #자체적으로 등급 정해 고객에 대출 #빅데이터 DB 만들던 한국신용정보원 #시민단체서 개인정보법위반 혐의 고발 #한국 빅데이터 활용 63개국 중 56위 #사전 규제보다 사후규제 강화하고 #개인 정보 유출시 강력 처벌해야 #

이들에게 은행 문이 열린 건 빅데이터 덕이다. 마이뱅크는 마윈(馬雲)의 알리바바가 지분의 30%를 출자한 회사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만든 신용평가시스템 ‘즈마신용(芝麻信用)’을 활용한다.

이용자의 전자상거래 결제 내용, 신용카드 연체 여부, 통신비 납부 상황 등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고객의 신용등급을 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금융거래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에게 중금리 대출과 무담보 신용대출을 한다.

황하오(黃浩) 행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마이뱅크의 부실대출 비율은 1% 수준”이라며 “3000개가 넘는 위험 관리 전략을 통해 대출을 심사한다”고 말했다.

마윈

마윈

저만치 앞서가는 중국에 비해 빅데이터를 이용한 금융서비스에서 한국은 걸음마도 제대로 못 뗐다.

한국신용정보원은 ‘금융권의 빅데이터 허브’를 표방하며 2016년 1월 출범했다. 은행이나 보험사가 보유한 개인 정보를 누구 것인지 알 수 없게 암호화 처리(비식별화)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이다. 금융사가 개인 정보를 마음대로 교환해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설립됐다.

신용정보원은 보유한 금융권 대출·연체·체납 및 보험 계약과 사고 이력 정보 등을 결합해 만든 ‘신용정보 표본 데이터베이스(DB) ’서비스를 올해 제공할 계획이었다. 중소형 금융회사, 핀테크 기업 등은 이를 이용해 상품 개발이나 시장 분석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서비스의 연내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지난해 11월 참여연대 등 12개 시민단체가 신용정보원과 한국정보화진흥원 등 4개 비식별 전문기관과 SK텔레콤 등 20개 기업을 개인정보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다른 기관과 기업이 보유한 3억4000만건의 개인정보를 결합해 활용했다는 게 고발인 측의 주장이다.

이 고발 건으로 빅데이터 관련 연구와 작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민성기 신용정보원장은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하기는 힘들고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융 빅데이터는 금융권의 신용정보 공백 문제를 푸는 등 금융산업 발전을 이끌 엔진으로 꼽힌다. 은행 등이 보험료 납부, 통신비 납부, 가맹점 결제 정보 등 다른 회사가 보유한 가명 정보를 활용하면 고객 신용 평가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는 등 다양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어서다.

문제는 법의 불투명성이다. 개인정보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 등 부처별로 법이 있지만 법적 기준이 다르고 개념도 모호하다. 일관되지도 않다.

그래서 2016년 7월 정부는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행정해석으로 개인 식별 정보를 제거하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법적 지위가 애매모호해 개인 정보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과 비식별화를 통한 활용에 무게를 두는 쪽이 충돌하면서 빅데이터 활용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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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금융회사는 빅데이터 활용을 필수로 여긴다. 씨티은행은 중ㆍ저신용자 대출심사에 IBM 슈퍼컴퓨터 ‘왓슨’을 이용하고 있다. 중국 텐센트 계열의 위뱅크는 통신ㆍ온라인 쇼핑 정보를 활용해 저신용자에게 중금리 대출을 해 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17년 국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빅데이터 활용과 분석 항목에서 63개국 중 56위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7 디지털경제 아웃룩’에 따르면 국가별 기업의 빅데이터 분석 활용 비율 순위에서 한국(4%)은 꼴찌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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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그나마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중금리 대출 심사를 할 때 통신비 납부 데이터(개인)와 카드사 가맹점 데이터(자영업자)를 쓴다.

신용데이터가 없거나 부족한 사회 초년생과 대학생, 자영업자 등은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기 힘들다. 이들을 ‘신용정보 부족자(thin filer)’ 혹은 ‘금융 이력 부족자’로 부른다. 신용등급은 보통 4~6등급이다. 이들이 케이뱅크에서 대출받을 수 있었던 건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자영업자 등에 대한 신용평가는 시중은행도 어려워하는데 통신사나 신용카드사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득이나 매출 수준 등을 평가해 중금리 대출을 늘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식별화해서 다양한 결합정보를 만들고 활용하기 위해 고객의 동의를 일일이 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빅데이터 활용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빅데이터 전문가인 톰 대븐포트 미국 밥슨칼리지 교수는 “한국은 빅데이터의 금광인데 이를 제대로 캐지 못한다”고 말했다. IMD에 따르면 한국의 인터넷 속도는 세계 1위, 전자정부 수준은 3위를 기록했다.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한국의 규제 강도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세다”라며 “사전 규제를 완화하고 사후 징벌을 강화해 빅데이터를 활용할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며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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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ㆍ이새누리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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