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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神隱<신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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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34면

중국은 은사(隱士)의 나라다. 치세와 난세가 난마(亂麻)처럼 얽힌 역사의 산물이다. 시인은 재치있게 등급까지 나눴다.

“큰 은사는 조정과 저잣거리에 숨고, 작은 은자는 산속에 들어간다. 산 속은 너무 쓸쓸하고 조정과 시장은 지나치게 시끄럽다. 대은과 소은 중간에 숨는 것만 못하니, 관직에 은거함이 적당하다(大隱住朝市, 小隱入丘樊. 丘樊太冷落, 朝市太囂喧. 不如作中隱, 隱在留司官).”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 ‘중은(中隱)’ 앞머리다. 여기서 “작은 은자는 들판에, 중간 은자는 저잣거리에, 큰 은자는 조정에 숨는다(小隱隱於野, 中隱隱於市, 大隱隱於朝)”는 말이 나왔다.

황제의 녹을 받으며 은둔한다는 대은(大隱)의 시조는 한(漢) 무제(武帝) 시대의 기인(奇人) 동방삭(東方朔)이다. 서슬 퍼런 황제와 농(弄)까지 주고받던 재주꾼이다. 그는 “몸을 낮춰 세속에 산다. 세상을 피해 금마문(궁궐의 문)에 머문다. 궁전 안에도 몸 피할 곳이 있는데, 깊은 산 속 초가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인가(陸沉于俗 避世金馬門 宮殿中可以避世全身 何必深山之中 蒿廬之下)”라며 ‘거지가(据地歌)’를 읊었다.

선비가 숨는 까닭은 수행(修行)을 위해서다. 우리 선조도 마찬가지였다. 고려말 이색(李穡)은 가축을 기르는 목은(牧隱), 정몽주(鄭夢周)는 채소를 키우는 포은(圃隱), 길재(吉再)는 대장간을 지키는 야은(冶隱)을 꿈꿨다.

신은(神隱)은 신비한 은신이다. 일본은 ‘가미카쿠시(神隱し)’라고 한다. 신의 장난으로 다른 세계로 사라진다는 의미다. 까닭 없는 행방불명을 일컫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 외교 사령탑 격인 외사공작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했다.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지 일주일 만이다.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롄(大連) 회동 이후 첫 활동이었다. 지난 2012년 총서기 취임 전에도 14일간 사라졌던 그다. 당시 홍콩 언론은 ‘신은(神隱)’이라 불렀다. 절대 권력자의 부재는 갖가지 억측을 낳는다. 집단 지도체제가 무너진 중국 정치의 새로운 리스크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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