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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보다 궨당’이라는 제주, 이주민 7만표가 판세 가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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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인물은 원희룡 따라올 사람 없수다. 그래도 정당은 민주당이 더 낫지마씸.”

제주지사 선거 민심 르포

17일 제주동문시장에서 만난 김모씨(52)는 시식용 과일을 깎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로 누굴 뽑을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동문시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모씨(49·도남동)도 “원희룡 아니면 문대림인데 막판까지 가봐야될 것 같다”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는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와 무소속 원희룡 후보(현 지사)의 양강구도라는게 현지의 정설이다. 자유한국당 김방훈 후보, 바른미래당 장성철 후보, 녹색당 고은영 후보도 뛰고 있지만 지지세는 아직 미미하다. 지사직 방어에 나선 원 후보가 내세우는 건 ‘인물론’이다.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수석에 3선 국회의원까지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가 2014년 제주지사에 처음 나섰을 때, 도민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다.

민주당 문대림, 무소속 원희룡 양강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를 놓고 맞붙은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가 지역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다. 문 후보는 여권 후보로서 제주를 발전시키겠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 각 후보 캠프]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를 놓고 맞붙은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가 지역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다. 문 후보는 여권 후보로서 제주를 발전시키겠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 각 후보 캠프]

20년 전 제주에 정착해 자영업을 하고 있는 이정석씨(48·성산읍)는 “난 지지정당이 따로 없는데, 원 후보의 정치 경력이나 능력이 남다르지 않으냐”며 “4년 임기는 너무 짧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줘야한다”고 말했다.

제주의 특성상 무소속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점도 원 후보에게 유리한 요소로 꼽힌다. 지난 6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3번이나 당선됐다. 동문시장 인근에서 만난 장모씨(64·삼도동)는 “원 후보가 바른미래당 탈당 후 지지율이 오르고 있지 않냐”며 “사람이 참 좋아도, 그 당에 계속 있었으면 무조건 당선 안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중교통체계 전면 개편,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 등 ‘원희룡표 도정’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21대째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택시기사 김정만씨(61)는 “버스 중앙차로가 생기면서 교통체증이 더 심해졌다”며 “원 후보한테 처음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너무 고집이 세고 행정이 미숙한 측면이 있다. 한 번 더 믿어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민주당의 높은 정당지지율이 최대 강점이다. 또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한 여권후보로서의 인적 네트워크도 세일즈 포인트다.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을 지낸 문 후보는 인생의 존경하는 멘토로 문재인 대통령을 꼽는 ‘친문 인사’다. 두 차례 제주도의원과, 제주도의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행정능력을 키웠고, 2012년과 2016년 서귀포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인지도를 쌓아왔다.

“문재인 정부와 호흡 맞출 문대림”

문 후보의 지지자라고 밝힌 60대 남성은 “이번엔 무조건 1번”이라며 “큰 정치에 관심두지 않고 제주도만을 살필 수 있는 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에선 ‘우대림’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이 골치아픈 요소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중도 낙마한 데다 성추행 전력이 있는 우근민 전 지사가 문 후보를 돕고 있는 데 대한 반감이 반영된 용어다. 제주법원 앞에서 만난 이모씨(72·삼도동)는 “우근민은 제발 선거에 관여하지 맙서게. 이제 깨끗한 정치 좀 합수다”라고 말했다.

제주지사 선거는 최근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이 원 후보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진 뒤 전국적 관심도가 높아졌다. 원 후보의 딸이 “아빠가 호상당해야 할텐데 … 신체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한 페이스북 글 논란도 계속 회자된다.

제2공항 건설에 대해선 아무래도 원 후보가 문 후보보다 더 적극적이다. 원 후보 측은 제2공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반대 여론을 의식해 “타당성 재조사 용역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말하고 있고, 문 후보 측은 “제2공항 반대는 안한다”면서도 “원 후보가 너무 밀어붙인 측면이 있는만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주 세화읍에서 20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59)는 “여기오는 손님들이나 주변사람들이 제2공항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결론은 문대림이 당선되면 공항은 안된다는 것”이라며 “부지가 아닌 인근 지역주민들은 땅값이 오를거라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산업에 종사하는 강재문씨(42·표선리)는 “서민들 입장에선 도지사 누가되든 잘 살게 해주는게 좋은데, 제2공항이 생기면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에 이도동 버스정류장 앞에서 만난 최모씨(66)는 “제주도에만 사는 입장에선 제2공항이 생겨봤자 좋을 것도 별로 없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제2공항이 선거판을 뒤흔들 변수까지는 아니란게 제주 정가를 잘 아는 이들의 관측이다. 원 후보의 지지자들은 “전체적으로 제2공항 찬성 여론이 높은데 반대가 극렬한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뿐”이라고 보고있고, 문 후보의 지지자들은 “원 후보가 반대 주민의 단식농성을 희화화해서 이런 화를 자초한 것”이라며 또 다른 공격 포인트로 활용하는 정도다.

“인물은 원희룡이 낫수다”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를 놓고 맞붙은 무소속 원희룡 후보가 지역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다. 원 후보는 ’제주가 낳은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각 후보 캠프]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를 놓고 맞붙은 무소속 원희룡 후보가 지역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다. 원 후보는 ’제주가 낳은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각 후보 캠프]

지역 정가에서 주목하는 건 최근 급격히 불어난 이주민들의 표심이다. 2010년부터 지난 2월까지 제주로 순유입된 인구는 7만473명이다. 6·13지방선거 제주지역 유권자수(52만7210명)의 13%를 차지한다. ‘정당보다는 궨당(친인척의 제주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거때마다 학연,지연,혈연에 얽매이는 제주의 지역문화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거란 기대가 있다.

이 중에서도 서울, 경기 등지에서 제주로 온 젊은층은 아무래도 민주당 후보를 선호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7년 전 제주에 온 박모씨(41·대륜동)는 “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하고 있는만큼 현 정부와 호흡을 잘 맞추면서 제주를 발전시킬 수 있는 문 후보에게 더 호감이 간다”고 말했다.

각 캠프에서도 이주민들의 표심에 호소하는 공약 마련에 힘쓰고 있다. 제주 애월읍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2년차 이주민 이건배씨(32)는 “외지에서 제주로 와 카페나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내국인 카지노나 제2공항 건설처럼 관광객을 많이 유치할 수 있는 공약에 눈길이 간다”며 “지금 후보들은 어떤 게 표에 도움이 될까 살피느라 화끈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양성철 제이누리 뉴스콘텐트 국장은 “더이상 궨당 정치에 기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선거구도의 영향이 적고, 특정 이슈보다는 인물 자체에 관심이 많다. 특히 유입인구의 투표 경향이 판세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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