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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지도층의 시대착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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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버마 지도층이 내놓은 방안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수구세력이 초기에 나타내는 미온적 반응의 고전적 예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늦게, 너무 적은」양보인 것 같으며 그런 방식으로는 버마가 26년간의 1당 독재로 축적해온 부조리를 타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버마의 예는 또 혁명적지도자는 국가건설 작업에는 부적합하다는 통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
국내 경제의 낙후성에 반발한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버마 지도부는 한편으로 지도자「네윈」을 뒤로 물리고 개혁을 약속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경파「르윈」을 후계자로 내세움으로써 개혁은 하되 집권세력이 그 범위와 방향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이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집권 사회주의 계획당이 지난 3월부터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반정시위를 유혈 진압한 「르윈」을 새 대통령경 당의장으로 선임하고 집권당의, 도덕적 부패를 규탄해온「아웅지」등 개혁주의자들을 무더기로 구속한 것이 바로 그런 의사표시인 것이다.
「네윈」은 이임사를 통해 1당 체제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다당제를 채택할 것인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의했으나 의회는 이를 거부했다. 이체 그런 선택은 물건너 간 것으로 의회도 판단한 것이다.
버마 국민들은 지난 26년간 국가통제 경제만을 일삼아온 현 집권층이 다른 어떤 정치·경제 체제로의 변혁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새 목소리와 그것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수용하려는 수구세력간의 갈등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시아 대륙을 휩쓰는 거대한 바람이 되고 있다. 그것은 2차대전 이후 거의 비슷한 형태로 유지되어온 건국 엘리트들의 독선과 거기서 비롯한 정치·경제·사회적 침체상태가 지도자 및 체제의 노화현상과 때를 맞추어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의 거대한 도전을 받아 일어나는 바람인 것이다.
이와같은 충동은 혁명 아니면 진정한 개혁으로만 타개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다. 한국, 필리핀, 대만 등이 이미 겪고있는 이 변혁의 바람이 사회를 돌풍속으로 몰아넣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계몽된 지도층이 개혁의 욕구를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엘리티즘의 독선으로 후퇴하는 길은 이미 막혀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시각에서 볼때 버마지도층이 추구하려는 대응방식은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버마식 사회주의는 식민지시대의 피해의식을 치유하는 정신요법은 될지 몰라도 국가건설을 하기 위한 청사진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뜻에서 버마 지도층에 하루 빨리 아시아가 맞은 시대적 변혁의 흐름을 정확히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수구의 헛된 꿈에서 깨어나 민주화 개혁으로 전진하는 폭을 택하기를 기대한다. 그와같은 결단은 버마가 쇄국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번영시대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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