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객이 쇼핑몰의 챗봇(메신저에서 일상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채팅로봇 프로그램)에 “데이트할 때 신으려고 3일 전에 주문한 신발을 아직도 받지 못했는데 언제 배송될까요”라고 묻는다. 인공지능(AI)이 “네, 고객님. 2일 안에 배송 완료 예정입니다”라고 답한다.
AI 스타트업 ‘아크릴’ 박외진 대표 #인간 감정 34가지로 분류해 연구 #2016년 공감형 로봇 ‘조나단’ 출시 #특허출원 11건 … LG서 10억 투자
하지만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는 ‘공감형’ 인공지능은 이렇게 대답한다.
“새 신발을 신고 나갈 기대감이 크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담당 택배 기사가 하루 결근을 해 일정이 지연됐습니다. 주말에 신고 외출하실 수 있게 2일 안에 배송 완료하겠습니다.”
두 번째 대답을 들은 고객은 언짢은 마음이 풀려 다시 해당 쇼핑몰을 이용할지 모른다. 인간의 감성에 특화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인 ‘아크릴’의 박외진 대표(46·사진)가 주목한 것은 이 부분이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크릴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현재 인공지능은 단순한 지식 전달의 역할만 하지만, 공감형 인공지능은 질문자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에 맞춘 대답을 한다”며 “앞으로 인공지능 시장에서 승자는 얼마나 인간에 공감하느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설립된 아크릴은 감성 인식 분야에서 기술력으로 보유하고 있는 업체다. 2013년 감성인식엔진(AIE)을 개발했고, 2016년 공감형 인공지능인 ‘조나단’을 출시했다. 관련 특허출원만 11건이다. 2012년 중소기업청 디지털 경영혁신 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후 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등과 기술협약을 맺었다.
LG전자도 최근 아크릴의 지분 10%를 10억원에 취득하고, 조나단을 로봇에 적용할 계획이다. LG전자는 미래 먹거리로 로봇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카이스트(KAIST)에서 전산학 학·석·박사 학위를 받은 박 대표는 창업 전까지 연구개발(R&D)만 했다. 함께 창업에 나선 4명의 동료도 모두 카이스트 출신의 연구원이다. 정보 추출·검색 등을 연구하던 박 대표는 ‘감성 컴퓨팅’에 흥미를 느꼈다. 감성 컴퓨팅은 인간의 감성을 인지·해석할 수 있는 시스템·장치 설계에 관련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분야다. 미국에선 199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됐다. 박 대표는 “우리가 창업했던 2011년까지도 국내는 감성 컴퓨팅 불모지였다”며 “창업자들이 다 연구만 했던 사람들이라 개발한 기술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알리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조나단은 인간의 감성을 34가지로 분류해서 파악한다. 인터뷰 도중 조나단에게 “춥고, 배고프고, 졸린 데 돈이 없다”는 문장을 주니 “짜증 나고, 싫고, 지루한 감정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성별은 여성(59%)이고, 연령대는 30대(80%)라는 정확한 결과를 내놨다. 박 대표는 “인간의 감정은 표정·목소리·몸짓 등 생리적 신호를 통해서 표출되는데 텍스트에도 이런 정보가 담겨 있다”며 “이 정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4차산업시대 중요한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형 인공지능의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이나 댓글을 분석해서 특정 주제에 대한 여론을 분석할 수 있고, 특정 광고를 본 사람의 반응을 측정해서 마케팅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조나단은 기업의 부실 징후를 예측하는 시스템 구축, 금융업체 콜센터 상담 내용 분석 등에 적용됐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