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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도둑맞은 문화재가 버젓이 경매도록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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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문화재청 사범단속반 강신태 반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1980년대 중반 전남 순천시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팔상도' 두 점과 '삼십삼조사도' 석 점을 12일 문화재청이 회수했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팔상도'는 부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 1780년대 만들어진 선암사 '팔상도'는 조성 시기.배경, 시주자 등의 기록이 남아 있어 불교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문화재청이 '팔상도'의 소재를 파악한 건 올 2월 초. 같은 달 23일 예정됐던 서울옥션의 출품도록에 '팔상도'가 포함됐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과 함께 수사에 나섰다.

서울옥션 측은 "출품자와 가격이 맞지 않아 '팔상도'를 막판에 경매에서 제외했다. 경매가 끝난 후 경찰에서 도난품임을 알려왔다. 그러나 도난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실수는 인정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 있는 소유주는 경찰이 수사 고삐를 죄자 지난 6일 변호사를 통해 해당 유물을 경찰에 반납했다.

강 반장은 "옥션 측이 '2004년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난문화재 도록'에 이번 작품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99년 조계종에서 낸 '도난문화재 백서'에는 분명히 실려있다"며 "좀더 조사해 보면 소유주의 은닉 여부, 경매회사의 부주의 등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십삼조사도'는 부처의 33 제자를 옮겨놓은 작품. 문화재청은 올 초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한 제약회사 경영주에게 해당 문화재가 '장물'이라고 통보했으나 소유주가 자진 반납을 하지 않아 강제 회수했다. 문화재보호법 84조에 따르면 도난문화재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은닉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

귀중한 문화재가 난데 없이 사라지고, 알수 없는 경로를 거쳐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경매에 버젓이 출품되는 현실은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말해준다. 밀매 경로를 되짚어가는 철저한 수사가 기대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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