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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진실’ 일본사회 알린 日기자…“본분으로 생각하고 기사화”

중앙일보

입력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서 최초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받았다.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는 15일 광주학생문화회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우에무라 다카시(59·植村隆) 가톨릭대 초빙교수에게 제24회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수여했다. [사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서 최초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받았다.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는 15일 광주학생문화회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우에무라 다카시(59·植村隆) 가톨릭대 초빙교수에게 제24회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수여했다. [사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재직 시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사회에 처음으로 알린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가톨릭대 초빙교수가 “나쁜 역사를 직시하고 다시는 그런 인권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기사화했다”고 회상했다.

15일 우에무라 교수는 이날 ‘김용근 민족교육상’ 수상하기 위해 광주를 찾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사히신문 사회부 기자로 재직했던 1991년 8월 11일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일본에서 처음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직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명을 건 증언이 잇따랐고,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됐다.

당시 일본 내 우익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우에무라의 기사가 한일관계와 일본의 이미지를 악화시킨 ‘날조 기사’라는 왜곡 주장을 하며 공세를 폈다.

이후에도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일본 극우의 위협이 계속됐고, 그로 인해 고베 쇼인 여자학원대학 교수 임용이 취소되는 등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와세다대학 출신인 우에무라 교수는 재일동포 선배로부터 1980년대 한국의 정치 격변 상황을 듣고 한국 특파원이 되고자 아사히신문에 입사했다.

이후 1987년 특파원 시절 6월 항쟁을 지켜봤고 1980년 광주학살과 관련해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대중 사형 선고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고도 했다.

우에무라 교수는 2016년부터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서전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날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수상한 우에무라 교수는 “한국 민주화의 성지에서 민족교육상을받게 돼 감격스럽다”며 “광주 사람들이 ‘우에무라 자네는 광주의 친구다. 열심히 하라’는 마음으로 상을 준 것 같아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용근 민족교육상은 일제 강점기 평양 숭실학교 재학 중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졸업 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두 차례 걸쳐 3년여 옥고를 치른 석은(石隱)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의 가족과 제자들이 제정한 상이다.

해방 이후 교사로 활동하던 김용근 선생은 교직을 떠난 후 1980년 6월 5·18과 관련해 지명 수배 중이던 제자들을 자택에 숨겼다는 이유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 6월을 선고받기도 했으며 1985년 타계했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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