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뚱이는 불살라 배 침몰지역에 뿌려주오. 아마도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님 할까?”
경기도 안산 단원고 고(故) 강민규(2014년 사망 당시 52세) 교감의 유서 중 일부다. 그는 4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활동을 벌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육지로 후송됐다. 대형 재산사고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생존자였지만,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된 임모·권모 군 등 여러 구의 시신 수습을 도왔다. 하지만 참사 다음 날 그의 무거운 책임감은 심신을 집어삼켰다.
강 전 교감의 둘째 딸인 수현(23·가명)씨를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10일 안산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강 전 교감이 생전에 쓰던 갈색 가죽 지갑 속에 보관돼온 유서에는 이제 별이 된 학생, 젊음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후배 교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겼다. 수현씨는 “30년 가까운 교직 생활 동안 학생들을 너무나 사랑하신 선생님이신데… 아빠가 이대로 잊힐까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나직했다.
- ‘스승의 날’이다.
- “아빠는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교사였다.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서 학교(단원고)에 상황을 보고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직접 학생들을 구조했다. 순직 인정 여부를 다툰 재판 과정에서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이 나왔다. 후에 한 생존자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런 걸 꼭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3년간의 스승의 날 때 유공 교원 표창장 한장 없었다. 경기도교육청이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
- 부친의 불명예를 주장하는데.
- “(지난달 16일 엄수된) 세월호 참사 4주기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마저 아빠는 제외됐다. 희생자는 304명이 아닌 305명이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영정과 위패를 모실 분향소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었다. 4년간 제대로 된 추모공간이 없었다. 지난 합동 영결·추도식, 이번 스승의 날이 더 가슴 아픈 이유다.”
-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냈는데.
- “이대로 내 아빠이자, 강민규 전 단원고 교감 선생님이 잊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작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달 20일부터 ‘故 강민규 교감 선생님 위험직무 순직 공무원 인정 및 강압수사 의혹 진상규명’이란 청원이 진행 중이다. 수현씨가 올린 청원이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로부터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청원인(20만명 이상)에는 한참 못 미친다.
- 청원 동의 인원이 1만명도 되지 않는다.
- “공식 답변을 듣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하지만 동의해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드린다. 뜻을 같이해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더는 울지만은 않을 것이다. 몇몇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들, 동료 교사분들께서 아빠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뜻을 같이해주시리라 믿는다.”
- 부친이 죄책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아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게 죄책감 아닌가. 아빠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참사 초기 ‘강 전 교감이 참사가 난 수학여행을 기획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해 새 학기에 단원고로 부임했는데 이런 게 가능한가. (실제 단원고의 수학여행은 참사 3년 전부터 동일한 여행사가 맡아 진행해왔다) 생존자로서 진상규명에 힘쓰지 않고 생을 저버렸다고도 주장하는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철저히 방치됐다. 아빠가 사라진 그 날 ‘안산 집에 갔느냐’고 사고수습본부 쪽에서 전화가 오더라.”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 이틀 뒤인 2014년 4월 18일 오후 4시5분 진도실내체육관 뒷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 속 날짜는 하루 전이었다.
- 강압수사 의혹도 제기했는데.
- “아빠는 일반 생존자와 달리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선원들과 함께 관공선에 태워져 목포해경에서 장시간의 조사를 받았다. 한 해경 수사관이 아빠를 향해 욕설했다는 증언을 세월호 선원이 했는데 정확히 조사되지 않았다. 아빠를 둘러싼 강압수사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다. 새로 시작하는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에서 밝혀지길 기대해본다. 또 아빠만 순직이 인정되지 않았는데 동등한 처우를 받기를 원한다. 세월호 희생자로 인정받길 바란다.”
안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