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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도 교사를 하겠다는 아빠가 잊힐까 두려워요"

중앙일보

입력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의 둘째 딸(23)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민욱 기자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의 둘째 딸(23)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민욱 기자

"내 몸뚱이는 불살라 배 침몰지역에 뿌려주오. 아마도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님 할까?”

경기도 안산 단원고 고(故) 강민규(2014년 사망 당시 52세) 교감의 유서 중 일부다. 그는 4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활동을 벌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육지로 후송됐다. 대형 재산사고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생존자였지만,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된 임모·권모 군 등 여러 구의 시신 수습을 도왔다. 하지만 참사 다음 날 그의 무거운 책임감은 심신을 집어삼켰다.

강 전 교감의 둘째 딸인 수현(23·가명)씨를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10일 안산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강 전 교감이 생전에 쓰던 갈색 가죽 지갑 속에 보관돼온 유서에는 이제 별이 된 학생, 젊음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후배 교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겼다. 수현씨는 “30년 가까운 교직 생활 동안 학생들을 너무나 사랑하신 선생님이신데… 아빠가 이대로 잊힐까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나직했다.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 생전모습 . [중앙포토]

고(故) 강민규 단원고 교감 생전모습 . [중앙포토]

남은 가족에겐 잔인한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다.
“아빠는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교사였다.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서 학교(단원고)에 상황을 보고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직접 학생들을 구조했다. 순직 인정 여부를 다툰 재판 과정에서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이 나왔다. 후에 한 생존자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런 걸 꼭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3년간의 스승의 날 때 유공 교원 표창장 한장 없었다. 경기도교육청이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 
부친의 불명예를 주장하는데.
“(지난달 16일 엄수된) 세월호 참사 4주기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마저 아빠는 제외됐다. 희생자는 304명이 아닌 305명이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영정과 위패를 모실 분향소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었다. 4년간 제대로 된 추모공간이 없었다. 지난 합동 영결·추도식, 이번 스승의 날이 더 가슴 아픈 이유다.”
지난 10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좌현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는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완료 됐다. 목포=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0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좌현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는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완료 됐다. 목포=프리랜서 장정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한 호소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냈는데.
“이대로 내 아빠이자, 강민규 전 단원고 교감 선생님이 잊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작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달 20일부터 ‘故 강민규 교감 선생님 위험직무 순직 공무원 인정 및 강압수사 의혹 진상규명’이란 청원이 진행 중이다. 수현씨가 올린 청원이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로부터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청원인(20만명 이상)에는 한참 못 미친다.

강민규 전 교감의 명예회복을 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강민규 전 교감의 명예회복을 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청원 동의 인원이 1만명도 되지 않는다.
“공식 답변을 듣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하지만 동의해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드린다. 뜻을 같이해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더는 울지만은 않을 것이다. 몇몇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들, 동료 교사분들께서 아빠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뜻을 같이해주시리라 믿는다.”
구조돼 생존자가 된 게 '죄'?

부친이 죄책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아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게 죄책감 아닌가. 아빠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참사 초기 ‘강 전 교감이 참사가 난 수학여행을 기획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해 새 학기에 단원고로 부임했는데 이런 게 가능한가. (실제 단원고의 수학여행은 참사 3년 전부터 동일한 여행사가 맡아 진행해왔다) 생존자로서 진상규명에 힘쓰지 않고 생을 저버렸다고도 주장하는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철저히 방치됐다. 아빠가 사라진 그 날 ‘안산 집에 갔느냐’고 사고수습본부 쪽에서 전화가 오더라.”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 이틀 뒤인 2014년 4월 18일 오후 4시5분 진도실내체육관 뒷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 속 날짜는 하루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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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수사 의혹도 제기했는데.
“아빠는 일반 생존자와 달리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선원들과 함께 관공선에 태워져 목포해경에서 장시간의 조사를 받았다. 한 해경 수사관이 아빠를 향해 욕설했다는 증언을 세월호 선원이 했는데 정확히 조사되지 않았다. 아빠를 둘러싼 강압수사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다. 새로 시작하는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에서 밝혀지길 기대해본다. 또 아빠만 순직이 인정되지 않았는데 동등한 처우를 받기를 원한다. 세월호 희생자로 인정받길 바란다.”  

안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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