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막은 고의추돌 한영탁씨, LG의인상·새차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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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한 한영탁씨. [사진 한영탁씨]

아들과 함께한 한영탁씨. [사진 한영탁씨]

“너무나 많은 격려와 관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럽네요.”

의식 잃은 운전자, 고의추돌로 구해 #보험사도 치료비 등 100% 보상 약속 #“부담스럽네요. 해야할 일 했을 뿐인데”

고속도로 상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의 차를 자신의 차로 막아 세워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고속도로 의인’ 한영탁씨(46)의 말이다. 그는 15일 중앙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라고 했다. ‘의인(義人)’이라 불리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큰일 나겠다고 판단해 내린 그의 행동은 

한씨는 “차가 중앙분리대를 긁으면서 가는 게 이상해 창문 너머로 운전자를 보니 조수석 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었다”며 “경적을 수차례 울렸지만 깨어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세워야겠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아 속도를 내 앞을 가로막았다”고 했다.

A씨의 차량이 왼쪽 중앙분리대를 받은 직후의 모습 [사진 SUV차량 영상화면 캡처]

A씨의 차량이 왼쪽 중앙분리대를 받은 직후의 모습 [사진 SUV차량 영상화면 캡처]

그는 당시를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경찰이 확보한 SUV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역력했다.

상황은 이랬다. 지난 12일 오전 11시30분쯤 경기도 화성시 제2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조암IC전방 3km 지점. 1차로를 달리던 A씨(54)의 코란도 차량(SUV)이 갑자기 왼쪽 중앙분리대를 들이 받았다. 충돌직전 A씨는 기절하는 듯 '으~윽' 소리를 냈다. 하지만 차량은 멈추지 않은 채 계속 중앙분리대를 긁으며 전진했다. 그렇게 4분 가량 1.5km구간을 이동했다.

고속도로서 중앙분리대 충돌 후 1.5km 아찔한 주행

주변 차량들은 비상등을 켜며 피해갔다. 이때 SUV 차량 옆에서 ‘빵~~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한 검은색 투스카니 승용차가 앞을 가로막았다. 한씨 였다. SUV는 멈추지 않고 한씨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약간의 충격이 있었지만 3~4초후 두 차량은 멈춰 섰다. 한씨가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다.

한씨는 이내 조수석쪽으로 뛰어가 창문을 두드리며 A씨를 깨웠다. 하지만 A씨는 깨어나지 않았다. 여의치 않았는지 한씨는 자신의 승용차로 달려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어 옆 차로에서 서행하던 화물차 운전자에게 망치를 빌려 창문을 깬 후 SUV 운전자 A(54)씨를 차 밖으로 옮겼다. 당시 빗길이어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한 상황이 한씨의 기지로 아무 사고 없이 끝난 것이다. 피해는 한씨의 뒤 범퍼와 깜빡이 등이 깨진 게 전부다.

한영탁씨가 자신의 승용차로 앞를 가로막고 있다. 충돌하기 직전 모습. [사진 SUV차량 영상화면 캡처]

한영탁씨가 자신의 승용차로 앞를 가로막고 있다. 충돌하기 직전 모습. [사진 SUV차량 영상화면 캡처]

당시 A씨의 상황이 어떠했느냐는 물음에 한씨는 “완전히 기절해 계셨어요. 선생님, 선생님 괜찮으세요 그랬더니 살짝 눈을 뜨셨는데 눈이 풀려 있는 것 같았다”며 “술을 드신 거나 이런 것도 아니고 돌아가신 분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어 119 신고를 요청한 뒤 손발을 조금 주물러드렸다”고 했다. A씨는 당시 음주는 아니었다고 한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두 차량의 사고에 따른 보험처리는 어떻게 됐을까. 현행법상 고속도로에서는 주·정차를 하면 안된다. 정차를 한 차량의 과실이 크다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 시 일시 주·정차 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보험 적용시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쌍방 과실, 특히 한씨의 과실이 더 크게 나올 수 있다는 게 보험회사들의 설명이다.

교통사고 후 보험처리는 어떻게 됐나

하지만 A씨가 가입한 보험회사(교보생명)는 이같은 상황을 참작, 한씨의 과실을 묻지 않기로 했다. 한씨의 차량과 병원 치료비 등 100% A씨 과실로 인정해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한씨는 “보험 생각에 조금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해당 보험사로부터 ‘우리 측 과실이 100% 인정되는 만큼 대물과 대인 모두 보상하겠다’는 전화가 왔다”며 “보험회사 측에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영탁씨가 의식을 잃은 운전자의 차량을 자신의 승용차로 가로 막아 세운 뒤 차에서 내려 운전석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SUV차량 영상화면 캡처]

한영탁씨가 의식을 잃은 운전자의 차량을 자신의 승용차로 가로 막아 세운 뒤 차에서 내려 운전석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SUV차량 영상화면 캡처]

사고 소식을 접한 현대자동차 그룹은 자사 브랜드의 한씨 승용차가 파손된 점을 고려해 수리비 지원과 신형 벨로스터 차량을 전달하기로 했다. 한씨가 평소 스포츠카를 즐겨 타고 있어서다. LG복지재단도 한씨에게 'LG 의인상'을 전달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한씨는 “당시 상황에서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라며 “나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분도 건강을 회복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모두 무사해 다행”이라고 했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비까지 내려 도로상태가 안 좋았는데 만일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와 추돌 사고라도 났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남을 먼저 생각한 한씨의 신속한 대처, 순간의 기지 덕분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천경찰청은 한씨에게 표창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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