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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비정규직 방해로 무산된 간담회 … 갈길 먼 한국GM 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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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한국GM은 14일 오전 인천 부평공장에서 ‘경영 정상화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한국GM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불거졌던 수많은 논란에 배리 엥글 GM인터내셔널 사장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직접 대답하는 자리였다.

협상안에 자신들 의견 반영 안되자 #비정규직 노조 행사장서 기습 시위 #새 출발 계기로 삼으려던 계획 꼬여 #판매 회복 더뎌지면 결국 모두 손해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건 한국 정부와 제너럴모터스(GM)의 협상 과정에서 몇 가지 의혹이 남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정부는 “GM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한국에 유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GM 본사 입장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한국GM을 지원하는 방식(GM은 대출, 산업은행은 출자)이 양쪽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GM이 또다시 철수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 노조)가 간담회장에 임의로 난입하면서다. 한국GM은 “안전상의 문제로 경영 정상화 기자회견은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지난한 3개월간의 경영 정상화 협상 기간 중앙일보는 엥글·카젬 사장과 여러 차례 마주쳤다. 그때마다 질문을 던졌지만 이들은 매번 답하길 외면했다. 이랬던 GM 고위경영진이 ‘무슨 질문이든 해보라’며 자발적으로 마련한 기회를 놓쳐 버렸다. 물론 비정규직 노조의 돌발 행동도 완전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정부와 GM이 협상을 마무리하자 이들은 자칫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14일 인천 한국GM 부평공장에서 경영정상화 기자간담회에 참석할 계획이었던 데일 설리번 한국GM 부사장이 금속노조 한국GM비정규직지회의 시위로 간담회가 취소되자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14일 인천 한국GM 부평공장에서 경영정상화 기자간담회에 참석할 계획이었던 데일 설리번 한국GM 부사장이 금속노조 한국GM비정규직지회의 시위로 간담회가 취소되자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한국GM 정규직 노조는 사 측과 합의한 교섭안에서 비노조원인 비정규직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사 측도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비정규직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며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 한국GM은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확정판결한 비정규직은 모두 채용했지만, 45명의 부평·군산 도급직 관련 소송은 아직 2심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노조가 한국GM 경영 정상화를 방해하는 건 자승자박이다. 한국GM이 판매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비정규직에게 돌아갈 일자리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원래 한국GM은 간담회를 계기로 의혹을 털어버리고 판매량 회복에 전력할 계획이었지만, 간담회 연기로 이런 일정을 줄줄이 연기했다.

이날 GM 경영진으로부터 들으려 했던 내용도 사실 비정규직 노조 주장과도 유관하다. 예컨대 비정규직 노조는 이날 본지 기자에게 “이전가격·원가계산 등 GM 부실 경영의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정대로 간담회가 열렸다면, 어쩌면 엥글 사장의 책임 있는 대답이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GM 간 자동차 산업발전 협력 협약식’ 때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황호인 한국GM 부평비정규직지회장이 백운규 장관의 앞길을 막아섰다. 백 장관은 “여러분들의 문제를 정부가 내팽개치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정부가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안 될 일을 되게 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방관만 하지도 않을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다급하다고 경영 정상화 일정을 방해한 것은 겨우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한국GM을 다시 사지로 밀어 넣는 행위다. 남은 의혹을 해소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GM 경영 정상화는 요원하다. 이날 간담회도 경영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다.

인천=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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