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일본 관계 폭풍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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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DNA 검사 결과 납북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이 납북 한국인 김영남이라고 발표한 11일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와 어머니 사키에, 메구미의 쌍둥이 남동생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심경을 밝히고 있다. [도쿄 AP=연합]

일본 정부가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이 납북 한국인 김영남씨라는 DNA 검사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북한과 일본 관계가 상당히 껄끄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 북.일 관계 상당한 타격=북한은 일본인과 한국인 납북자가 모두 관련된 이번 발표로 상당히 난처하게 됐다. 북한은 최근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한국 언론이 납북자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있을 정도로 납치 문제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실제로 이날 일본을 방문 중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DNA검사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미 납치 문제는 (북한이) 충분히 성의있게 대응해 끝난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납치 문제를 '이미 끝난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일 외무성의 사사에 겐이치로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이날 김 부상을 만나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성의있는 대응을 요구했다. 납치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북.일 수교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6자회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작지 않다.

◆ 일본, 한국에 납치 문제 공조 요구=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 총리는 이날 "한국에도 일본 이상으로 납치피해자가 있는 만큼 앞으로 한국 측과도 협력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사에 국장은 또 한국의 천영우 6자회담 수석대표에게도 조사결과를 전달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일본이 북한의 납치 문제와 관련해 공조를 요청하면서 한국의 입장이 묘해질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에 적극 협조할 경우 북한 측의 불만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과는 별개로 민간 차원에서 한.일 간 납치 문제 공조가 활발해질 가능성은 커졌다.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橫田滋) 등 가족들은 "유전자 검사로 북한에 생존 사실이 확인된 한국 납북자 가족들과 연계해 구출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요코타 부부는 이르면 다음달 중 한국을 방문해 김영남씨 가족과 만날 계획이다.

한편 한국인 납북자 확인이 일본 정부의 노력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납북 문제에 적극성이 부족했다는 여론의 질책을 받게 됐다.

◆ 일본 정부 치밀하게 준비=이날 아베 장관은 "오사카(大阪) 의과대학과 가나가와(神奈川) 치과대학에 DNA 감정을 의뢰했으며 양쪽 모두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북한이 검사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할 것에 대비해 복수의 기관에 확인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이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메구미의 남편 김철준씨가 남한 출신 납북자라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2월 중순 한국에서 다섯 납북자 가족의 혈액과 머리카락을 채취해 메구미의 딸인 김혜경씨의 DNA와 대조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일본 정부는 2002년 9월 평양에서 혜경씨를 면담하면서 그의 DNA 시료를 확보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 요코타 메구미=13세 때이던 1977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실종된 일본인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납치 사실을 시인했다. 북한은 요코타가 86년 김철준이라는 남자와 결혼해 이듬해 딸 혜경씨를 낳았으며 94년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 김영남=16세이던 78년 전북 군산시 선유도에서 수영을 하다 실종됐다. 97년 그가 북한에 살고 있다는 탈북자의 증언으로 공작원에 의해 북한에 납북됐음이 확인됐다. 북한에서 남파 공작원 교육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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