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는 지금 ② 치안 부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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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회로TV(CCTV) 카메라에 포착된 브라질의 치안 부재. 권총·화염병·곤봉으로 무장한 수백 명의 폭도가 3일 브라질 전력회사 건물에 난입해 기물을 때려부수고 있다. 이들은 전력공사의 댐 건설에 항의해 건물에 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AP=연합뉴스]

브라질 상파울루에 근무하는 삼성전자의 모든 주재원은 방탄 차량을 제공받게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치안 상황을 고려할 때 방탄차 지급이 불가피하다"는 현지 총괄대표의 건의를 본사가 받아들인 것이다. 삼성 현지법인은 상파울루 강도범들이 많이 쓰는 6연발 매그넘 권총에 연달아 3발까지 맞아도 끄떡없는 특수 차체와 방탄 유리가 장착된 차량을 물색 중이다. 인구 1000만 명의 대도시 상파울루에서는 매일 평균 7.9건의 강도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민생치안 확보를 최우선 공약의 하나로 내걸었다. 공수부대 출신인 그가 집권하면 치안 문제만큼은 해결될 것으로 사람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상황은 되레 악화하고 있다. 카라카스 시민 넬손 브리토(67)는 "대낮에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없는데도 경찰은 팔짱만 끼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카라카스에서는 몸값을 요구하는 흉악범들에 의해 캐나다 국적의 일가족 삼 형제가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95년 51건이었던 베네수엘라의 납치 범죄는 2002년 201건으로 급증했다.

가는 곳마다 "낮에도 혼자 다니지 말고, 밤에는 호텔 밖 출입을 삼가라"는 얘기를 귀 따갑게 들었다. 강도들은 신문지나 점퍼로 둘둘 만 권총을 들이대고 금품을 요구한다. 지갑을 주면 해치진 않는다. 지갑을 두 개씩 갖고 다니는 것은 상식이 됐다.

요즘 남미에서 가장 번창하고 있는 산업이 경호.보안 산업이다. 오피스 빌딩 입구마다 경호업체에서 파견한 건장한 청년들이 출입자들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한다. 단독주택 담장에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이 심어져 있고, 아파트 출입구마다 3중 차단장치가 설치돼 있다. 아르헨티나 일간지 '라 나시온'의 칼럼니스트인 호르헤 엘리아스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자기 돈으로 대신하고 있는 꼴"이라고 개탄했다.

브라질의 저명 언론인인 카를로스 사덴버그는 "인구의 50%에 육박하는 빈곤층, 치외법권 지대인 빈민촌의 확산, 박봉에 시달리는 경찰의 부패와 무사안일, 마약의 확산, 농촌 인구의 대도시 유입, 총기 소지 문화 등이 치안 부재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됐다는 것이다.

남미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칠레 같은 예외도 있다. 또 대도시를 벗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파울루 생활 20년째인 한 교민은 "대도시 범죄는 어디나 다 있는 것 아니냐"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상파울루=배명복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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