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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프로기사는 낙천주의…‘낙관형’ 인간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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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2)

바둑에 올바른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길이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격동의 시기에 중년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람들은 정수가 아닌 꼼수와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통하는 바둑에서 삶의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편집자> 

그리스와 달리 우리나라 해변에는 방파제나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중앙포토]

그리스와 달리 우리나라 해변에는 방파제나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중앙포토]

우리의 삶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 이것은 흔히 듣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실감하지 못한다. 현실 자체보다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면 당연히 시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경제 수준보다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명예롭지 못한 기록을 보유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음을 반영한다.

이와 관련해 그리스에 갔을 때 해변을 거닐면서 놀란 적이 있다. 그 해변은 사람들이 걷는 보도와 바닷가가 맞닿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방파제나 펜스 같은 것이 없었다. 위험해 보여 현지인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왜 바다에 빠지느냐고 반문했다. 한국 같으면 여러 가지 이유로 바닷물에 빠지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낙관형보단 비관형이 많은 한국인  

한국인의 행복감이 낮은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는 세상을 밝게 보기보다 비관적으로 보는 습관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경제가 어렵다거나 정치가 엉망이라는 식의 어두운 얘기를 많이 한다. 또한 장차 출산율이 낮아져 노인들이 우글거리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한다. 매스컴에서도 어두운 소식을 많이 전한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퇴직하고 자영업 하는 친구가 있다. 가끔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현재 하는 일에 대해 대화를 하는데, 이 친구로부터 밝은 얘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짭짤한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이 늘 비관적인 얘기를 하니 다른 사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낙천적으로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비율로 보면 낙관형보다 비관형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바둑판의 형세를 낙관적으로 보는 쪽이 좋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중앙포토]

바둑판의 형세를 낙관적으로 보는 쪽이 좋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중앙포토]

낙관형과 비관형 중 어느 쪽이 좋을까? 양쪽 다 일장일단이 있다. 비관형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영토싸움을 주제로 하는 바둑에서는 비관형보다는 낙관형이 되라고 권한다. 바둑판의 형세를 낙관적으로 보는 쪽이 우선 마음이 편하고 좋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비관형은 형세가 조금만 불리해져도 침울해한다. 이런 타입은 희망이 없다고 보면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자포자기 충동을 느끼고 무리한 수단을 쓰려고 한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무모한 수단은 회복 불능의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쉽다. 그래서 비관형은 바둑을 끝까지 두지 않고 중도에 던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한창때에 생을 마감한 사람처럼 단명국(短命局)을 두게 되는 것이다.

프로기사 중에서 빨리 던지기로 유명한 기사는 일본의 야마베 도시로 9단이다. ‘천재’라는 별명을 가진 야마베 9단은 100수 이내에 패배를 선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판을 끝까지 두면 250수 정도 되니 100수 언저리에서 던지는 것은 너무 이르게 바둑을 포기하는 셈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직 할 만한 것 같은데 비관주의자인 야마베의 눈에는 더 두기가 힘든 것으로 보이는 것 같다.

‘낙관형’ 이창호, 역전승 자주 거둬

낙관적인 성향으로 역전승을 자주 거두는 프로기사 이창호 9단(왼쪽). [연합뉴스]

낙관적인 성향으로 역전승을 자주 거두는 프로기사 이창호 9단(왼쪽). [연합뉴스]

이와는 달리 낙관형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는다. 인내하며 꾸준히 두다 보면 분명히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무리한 방법을 쓰지 않고 조금씩 만회해 가는 방법을 쓴다. 끈기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창호 9단이나 린하이펑 9단이 이런 타입이다. 이처럼 낙관적인 성향을 가진 프로기사가 역전승을 자주 거둔다. 실제로 바둑계의 정상에 선 프로기사 중에는 낙천주의자가 많다.

바둑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도 비관형보다는 낙관형이 더 좋을 것 같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면 우선 기분이 언짢고 절망적인 심리상태가 되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또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좋은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한다. 멋진 아이디어도 나오기 힘들다. 칠전팔기의 성공담은 비관주의자가 아닌 낙천주의자의 이야기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들고 비관적으로 보이더라도 그런 가운데서 낙관적인 요소를 찾아보도록 하자. 밝은 쪽을 바라보면 행복감이 높아져 사는 것이 즐거워질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shjeong@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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