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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2년간 규제 법안 문구 하나도 못 지운 바이오 특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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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공지능 닥터 왓슨. 한국에선 개인정보 보호법 등에 묶여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닥터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길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공지능 닥터 왓슨. 한국에선 개인정보 보호법 등에 묶여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닥터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제1기 바이오 특별위원회 얘기다. 2016년 3월 정부 주도로 탄생한 바이오 특별위원회는 올해 1월까지 모두 7차례 회의를 열고 종료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제2기 바이오 특별위원회(이하 바이오 특위)는 11일 출범 첫 회의를 연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산하로 꾸려진 바이오 특위의 홍보 문구는 요란했다. '문제 해결 중심의 바이오 콘트롤 타워', '연구 및 산업계의 애로사항 발굴 및 해결' 등이다. 방점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찍었다.
그는 “바이오·헬스 케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장애가 되는 제도는 과감히 철폐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처별로 분산된 바이오 규제 개혁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7개 부처가 바이오 특위에 참석했다.

하지만 바이오 특위가 철폐한 규제는 단 한 건도 없다. 7차례 회의 중 관련 규제를 논의한 건 마지막 두 차례 회의에 불과하다. 2년 동안 활동하면서 관련 법의 문구 하나도 바꾸지 못한 것이다. 올해 1월 바이오 특위가 주도해 만든 바이오 규제 신문고에 등록된 글은 10건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동안 바이오 특위 활동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발표하는 국가별 바이오기술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09년 15위를 기록했으나 2016년에는 24위로 내려앉았다.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AI) 닥터 개발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막혀 있다. 전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며 어느 나라보다 균질한 의료 데이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병원이 아니면 의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다. 한국이 앞서 있는 유전자 가위는 국내에선 배아 실험이 불가능해 미국 기업에 실험을 위탁하는 중이다.

한국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이 제공한 유전자 가위를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연구진이 인간 배아에 주입해 유전자를 바꾸고 있다. 국내에서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는 건 불법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한국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이 제공한 유전자 가위를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연구진이 인간 배아에 주입해 유전자를 바꾸고 있다. 국내에서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는 건 불법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그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9일 바이오산업 신규 일자리를 올해 연말까지 4만6000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3년 전보다 77% 늘어난 것이다. 2025년까진 바이오 기반 일자리를 12만 개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정부는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해 작년보다 5.1% 늘어난 3조5778억원을 생명공학 육성에 투자할 계획이다.

2년 동안 규제 하나도 풀지 못한 정부가 내놓은 장밋빛 전망을 믿을 수 믿어도 될까. 조 단위 예산을 쏟아붓기 전에 규제를 먼저 푸는 게 정책 우선순위가 아닐까. 장래가 밝다면 정부가 권하지 않아도 기업은 투자에 나선다. 그게 시장의 법칙이다.

강기헌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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