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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버크셔 해서웨이처럼은 못해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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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지난 1일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20억 달러, 약 2조1600억원이 증발했다. 원인은 이날 1분기 실적발표 후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애널리스트들과 가진 컨퍼런스콜. 머스크는 생산에 차질이 있는 보급형 전기차(모델3)의 생산 목표와 재무상태를 묻는 질문에 “지루하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며 불성실하게 답했다. 불안해 보이는 최고경영자(CEO)의 이날 실언은 투자자들에겐 중요한 정보가 됐다.

 지난 5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현장. 대형 스크린에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CEO(오른쪽)와 그의 오랜 친구이자 회사 부회장인 찰리 멍거가 보인다. [사진 AP]

지난 5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현장. 대형 스크린에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CEO(오른쪽)와 그의 오랜 친구이자 회사 부회장인 찰리 멍거가 보인다. [사진 AP]

며칠 뒤인 5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올해도 전 세계에서 4만여 명이 이 시골에 몰려들었다.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 현장을 찾은 주주들이다. 88세의 워런 버핏 CEO는 주요 종속 회사 사장들을 대동하고 무대에 올라 5시간 동안 주주 질문에 답하고 토론했다. 1965년 이후 2017년까지 회사의 주식가치를 19달러에서 21만1750달러로 매년 19.1 %씩 끌어올린 그의 통찰은 물론이고, 주총을 축제로 만든 형식이 더 눈길을 끈다. 이 회사는 포털 야후를 통해 2년 전부터 전 세계에 주총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다.

이런 장면은  ‘주식회사의 나라’ 미국에서나 가능한 얘기일까. 100조원 짜리 비전펀드를 굴리는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도 주주총회에서 직접 사업 비전을 발표하는 기업인이다. 주주들의 작은 질문들에도 깍듯이 답한다. 이 회사의 주총 현장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실시간 생중계된다.

하지만 ‘주주와의 소통’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기업을 국내에선 좀체 찾아볼 수가 없다.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총수들은 주총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 신경질이든 사업비전이든 총수의 발언을 직접 듣기가 어렵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췄지만, 주총에 못가는 주주들을 위한 배려도 없다. IT 벤처에서 출발한 IT 대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이런 와중에 최근 주주의 경영 참여를 강화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대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고민이 공감을 살 수 있을까. 코스피 시가 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주주가 원격에서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15곳(2017년 9월 말 기준)에 불과했다.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축제까지는 아직 바라지 않는다. 경영권 위협을 걱정하기 전에 주주에 대한 성의를 보이는 게 먼저다.

박수련 산업부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박수련 산업부 기자

박수련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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