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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담합 들러리만 섰는데…대법 “300억대 과징금 부과 정당”

중앙일보

입력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 담합에 ‘들러리’로 가담한 현대건설에게 내려진 300억원대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호남고속철 ‘들러리 응찰’ 현대건설 과징금 304억원 확정 #대법원 “현대건설, 담합 내용 통보 등 주도적 역할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현대건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현대건설은 2009년 호남고속철도 노반 신설 공사 13개 공구 입찰에서 다른 건설사들이 낙찰받을 수 있도록 ‘들러리 응찰’을 한 혐의로 304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건설중인 호남고속철도 모습 [연합뉴스]

건설중인 호남고속철도 모습 [연합뉴스]

당시 입찰 담합은 현대건설을 비롯해 대림건설ㆍ대우건설ㆍ삼성물산ㆍSK건설ㆍGS건설ㆍ현대산업개발 등 ‘빅 7사’가 주도했다.
이들은 입찰 공고 이전인 2009년 7월 금호산업ㆍ남광토건 등 다른 건설사에 ‘공사 나눠먹기’를 제안했다. 한 업체가 최대 1개 공구의 사업만 낙찰 받을 수 있는 ‘1사 1공구’ 원칙을 이용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추첨을 통해 낙찰 예정자를 선정했다. 대신 추첨에서 떨어지면 이듬해 발주될 철도 최저가낙찰제 공사에서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이례적으로 ‘빅 7사’와 낙찰 예정자 등은 사전 입찰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건설사 7곳에도 ‘들러리’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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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담합은 전체 입찰자 중 일부 업체들끼리만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사건에는 입찰 참가자 모두가 담합에 가담한 것이다. 현대건설도 들러리 역할에 가담했다.

이렇게 모든 업체가 가담하면서 낙찰가는 훨씬 높아졌다. 실제 이 공사의 예정가 대비 낙찰률은 최저가 낙찰제 평균 낙찰률(73%)보다 훨씬 높은 78.5%에 달했다.
낙찰자 추첨에서 심지어 ‘사다리 타기’ 방식도 동원됐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이에 공정위는 13개 공구의 계약금액 2조2651억원에 대해 부과기준율 7%를 기준으로 조사에 협조한 점 등 감경사유를 고려해 현대건설에 304억여원을 납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현대건설은 낙찰가 등 후속합의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공정위가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해 과도한 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는 추첨에서 탈락해 투찰가격 합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7개 대형 건설사 중 하나로 행위를 주도했고, 낙찰예정 건설사들이 알려 준 투찰가격으로 응찰을 함으로써 이 사건 공동행위에 가담했다”며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대법원도 “국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낙찰예정 건설사, 들러리 응찰 건설사, 투찰가격 등을 미리 정했다”며 “경쟁제한 효과가 매우 커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13개 공구 전부에 들러리 응찰을 해 담합에 끝까지 기여하는 등 다른 건설사들과 비교해 부과기준율을 다르게 정해야 할 만큼 가담 정도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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