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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지원 펀드'를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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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교육 투자는 가장 중요한 분배정책이면서 성장정책이다.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해 가난의 대물림을 최소화하는 것은 분배정책이다. 성장 측면에서 보면 교육 투자는 노동의 질을 향상시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교육 투자는 세금과 재정만으론 한계가 있다. 자본시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효율적인 재정운용이란 재정 투입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추가적 참여를 촉발시켜야 한다. 양극화 문제의 많은 부분도 자본시장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재정을 투입한다 해도 자본시장을 활용하면 정책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세금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조세저항이 커진다.

자본시장을 통해 교육 투자를 확대하는 구체적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자산유동화 증권'이란 특수한 채권을 활용하는 것이다. 기존 학자금 지원제도의 기본은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자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 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재정만으로 수혜 대상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은행도 높은 채무불이행률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꺼린다. 더욱 내년부터 신바젤협약이 시행돼 재무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면 학자금 대출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학술 진흥 및 학자금 대출 신용보증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새롭게 학자금 대출 신용보증기금이 설치됐다. 처음으로 기금의 신용보증을 통해 5000억원 정도의 학자금 유동화 증권이 발행됐다. 정부의 역할은 직접 학자금 대출에 보증을 서는 것이 아니라 자산유동화 과정에서 신용보증을 제공한다. 학자금 자체에 대한 보증이 아니라 유동화 자산에 대한 보증이 되면 재정 투입의 레버리지 효과가 크게 증가한다. 동일한 재정부담으로 훨씬 커다란 학자금 지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때 유동화 과정에서 발생되는 후순위채권에 투자할 주체가 있어야 한다. 후순위채권 투자펀드가 없으니까 모든 손실을 정부 재정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투자은행이나 사모투자전문사(PEF)가 후순위채권에 투자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삼성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 자금 8000억원의 일부를 이런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삼성 학자금 지원 펀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공계 학생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 지원 대상을 이공계 학생에 한정할 수도 있다. 펀드는 시장과 가격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의적이고 비효율적인 운용을 막을 수 있다. 삼성이 직접 장학금을 주면 100명이 받을 수 있지만 자산유동화와 후순위채권 펀드를 활용하면 1000명 이상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학자금 대출 유동화 시장의 출현과 발전으로 지속적인 등록금 증가와 고등교육 수요의 확대가 가능해졌다. 자산유동화 시장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교육수요를 충족시켰고, 갈수록 새로운 구조를 통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춘 혁신적인 학자금 유동화 증권이 개발되고 있다. 미국의 자산유동화 시장에서 학자금 대출 비중은 1995년 1%에서 지난해는 8%로 급증했다. 유동화 증권 발행규모도 1995년 3700억원에서 지난해는 153조원으로 증가했다. 우리도 교육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학자금 유동화 증권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교육 투자는 그 효과가 장기에 걸쳐 발생하는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투자다. 따라서 교육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위험을 거래하고 상품화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바로 자본시장의 역할이고, 활용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김형태 한국증권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