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한 경쟁보다 협동을|김동호<편집위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몇년전 멀고 아름다운 동네 (경기도부천시원미동)의 한 허름한 한옥 창가에는 인동덩굴이덮여 있었다.
여름철 퇴근무렵 그 집앞을 지나노라면 말할수 없이 신선한 향기가 풍겨왔는데 그것이 인동꽃 향기임을 곧 알수 있었다. 그 향기는 재스민처럼 진하지도 않고 난초처럼 은은하지도않은, 그 중간쯤 되었다.
피곤한 귀가길에 담너머로 향기를 보내줘 고마왔지만 그집에 사는 사람들이 그 꽃처럼 향기롭기를바랄 뿐이었다.
그후 이오덕선생의 글 속에서시골국민학교 어린이들이 약재상에팔아 학비에 보태기 위해 산과 들에서 인동꽃 따는 모습을 보고인동꽃의 다른 면, 즉 향기로울뿐만 아니라 한약재로도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선생은 인동꽃의 유용함을 예로 들어 비록 가난하지만 일하는 어린이들의 건강함을 얘기하고 있었다.
가람 이병기는 님을 더 붙들어두려는 애틋한 마음에서 며칠이고계속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시조를 썼다. 마을앞 징검다리에 냇물이 넘치면 님은 돌아갈 수가 없을것이기 때문이었다. 민중문학론자들은 비가 계속 내리면 논이 침수되고 논두렁이 무너질 것이므로 마을 농민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인동꽃은 감각으로서의 향기 이외에 실제로 생산물로서의 유용함이 있고, 비는 자기만의님을 자기 혼자 옆에 더 오래 두게 하는역할도 하지만, 전체 마을사람들에게 괴로뭄을 주는기능을 한다.
이와같이 사물의 한 면 이외에다른 면을 봄으로써 그 사물을 올바르게 이해할수 있으며 이것이 총체적 인식에 이르는 길이다.
요즘 분단과 통일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통일문제는 집권세력의 일방적 선언 아니면 정권안보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어온 과거에서 벗어나 오늘날 절실한 민족적 최대과제로 대두되었다. 대학생들의 선도적 열정과 민간차원에서의 활발한 논의를 정부가 적극 수용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사람들은 왜 분단이 계속되어서는안되는가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부족하고, 통일에의 소망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으며, 통일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분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동족간의 증오심·적대의식의 지속을 뜻한다. 한반도에서의 반평화적인 것은 모두 분단의 장치다. 무엇보다도 평화추구가 급선무고 이를위한 구체적방법론이 제시되고 있다.
둘째, 분단은 민족내부의 자율성을 파괴하여 사회·경제적 모순의큰 원인이 되고 있다.
세째,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는「이상의 자유시장」이 허용되지 않아극단주의가 판을 친다. 이렇게 볼때 분단은 통일의 반면교사인 셈이다.
통일이란 우리의 삶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같다. 우리들은 삶의 구석구석에서 분단적인 것을 극복해야 하며, 우리들의 오늘 하루하루생활이 곧 통일을 위한 것이라야만 한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통일이라고 할때 어떤 사람에게는 백두산·금강산을 구경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산가족에게는 혈육과 고향을찾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된 통일은 전국적으로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이룩하는 것일텐데 정치권은 통일국가에 대한 비전까지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민속놀이에 줄다리기가 있다.
이것은 양쪽에서 잡아당기지만 한쪽이 끌리고 밀림으로써 승패가 나는 놀이가 아니다. 한마을과 건넛마을이 모두다 나서서 힘센 자는줄을 잡고 아낙네들은 술과 떡을뻔찔나게 날라다 먹고 마시며 잡아당기기를 삼사일, 잡아당긴 줄이팽팽히 맞서 균형감을 이루었을 때에는 양쪽의 줄을 잡은 사람들이하나처럼 공중에 떠있는 상태가 된다.
이때 비로소 온 마을사람들은 와하고 환호하며 또다시 먹고 마시며 한판 놀아난다. 그러므로 자기하나와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통일적으로 그 줄속에 실현된 것이지 승패가 난 것이 아니다.
수확이 풍성한 오는 추석에는 휴전선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거대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광경을 상상해 보는 것은 꿈같은 얘기일까.
지난 70년 한때 정부는 평화통일 구상을 밝히면서 선의의 체제경쟁을 제의했었다. 물론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이 함께 민주화와 개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제 남과북이 서로 단순비교로 상대방에게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은 민족동질성 회복에 바람직하지않다.
남과 북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으로 나아가는데 인색치 말아야겠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인간관계의 기본도 경쟁이 아니라 협동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산다는 것은 별게 아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을 움직이며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본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크든 작든 누구에게나 귀중한 이잠재력을 발휘하는데 있어 우리서로는 도와주어야 한다.
독일과는 달리 단일민족으로서 유구한 통일국가 역사를 가진 우리가 짧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이룩하게 되는 날, 우리세대는 지금통일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민족사에서평가받게 될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