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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호텔부터 동네 빵집까지…단팥빵이 잘 나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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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은 수십 년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잘 팔리는 빵으로 꼽힌다. 사진은 통팥과 호두를 넣은 그랜드 델리의 단팥빵. [사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단팥빵은 수십 년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잘 팔리는 빵으로 꼽힌다. 사진은 통팥과 호두를 넣은 그랜드 델리의 단팥빵. [사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맛집 탐방을 즐기는 10~20대부터 익숙한 음식을 선호하는 백발의 어르신까지,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단팥빵. 보드라운 빵 속에 단팥이 듬뿍 들어있는 단팥빵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다. 부모님과 옛 은사를 찾아뵐 때 선물로 가져가기에도 이만한 간식이 없다.
그래서일까. 단팥빵은 지역을 불문하고 늘 가장 잘 팔리는 빵으로 꼽힌다. 특히 고급스러움을 내세운 특급호텔에서도 단팥빵은 매출 1위를 자랑한다. 롯데호텔서울 1층에 있는 빵집 ‘델리카한스’에선 단팥빵이 전체 빵 매출의 20%를 차지한다. 워낙 잘 팔리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 단팥빵을 구워내는데 빵이 나오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사가는 단골이 많다. 다른 호텔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서울신라호텔의 ‘패스트리부티크’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조선델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그랜드 델리’에서 가장 잘 팔리는 빵 역시 단팥빵이다. 조선델리 강현경 캡틴은 “단팥빵은 수십 년간 판매 1위인 인기 상품으로, 단팥빵 판매로 그날의 빵 판매 흐름을 가늠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라호텔의 패스트리 부티크처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한 특급호텔 델리에서도 단팥빵은 가장 잘 팔리는 메뉴다. [사진 서울신라호텔]

서울신라호텔의 패스트리 부티크처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한 특급호텔 델리에서도 단팥빵은 가장 잘 팔리는 메뉴다. [사진 서울신라호텔]

대형 마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트레이더스 베이커리’는 4월 속이 꽉 찬 앙금빵(6개입)을 내놨는데 출시 2주 만에 1만7000세트가 팔리며 전체 매출 1위를 차지했다. CJ푸드빌 ‘뚜레쥬르’에서도 단팥빵은 곰보빵·크림빵과 더불어 가장 잘 팔리는 빵으로 꼽힌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잇따라 한국에 진출하는 데다 국내 제과점도 쉴새 없이 신제품을 쏟아낸다. 하지만 유행이 빨라 반짝인기를 누리는 게 대부분인 외식업계에서 단팥빵이 수십 년간 변함없이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익숙한 맛 중장년층에, 빵집 순례 즐기는 젊은층도  

빵집마다 다른 식재료를 넣어 단팥빵의 맛을 차별화하고 있다. 사진은 막걸리 발효종을 넣은 롯데호텔 서울 델리카한스의 단팥빵. [사진 롯데호텔]

빵집마다 다른 식재료를 넣어 단팥빵의 맛을 차별화하고 있다. 사진은 막걸리 발효종을 넣은 롯데호텔 서울 델리카한스의 단팥빵. [사진 롯데호텔]

업계에서는 그 이유로 익숙함을 꼽는다. 조선델리의 오경인 주방장은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면 늘 사주셨던 게 단팥빵이었다”며 “중장년층에선 단팥빵에 대한 옛날 추억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팥은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식재료다. 예전엔 어린아이가 태어나 백일이 되면 붉은 팥으로 떡을 해 먹었다. 악귀를 쫓고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죽·떡·국수까지 팥으로 만든 음식은 일상 속 깊숙이 자리했었다. 여기에 이름 그대로 단맛을 더한 단팥빵은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겐 어린 시절부터 즐겨 먹던 익숙한 간식인 셈이다. 또한 특유의 단맛 때문에 어디에서 사더라도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된다. 그랜드 델리의 양몽주 지배인은 “기대하는 맛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단팥빵의 강점이어서 부모님과 어른들을 위한 선물로도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다른 빵에 비해 가성비가 높은 점도 단팥빵의 장점이다. 요즘 빵값은 대부분 빵 한 개 가격이 2000~3000원이지만 프랜차이즈 빵집의 단팥빵 가격은 1000원 초반대다. 실제로 뚜레쥬르의 단팥빵 소비자 가격은 1200원(매장에 따라 다름)이다. 여기에 팥이 들어있어 먹고 나면 속도 든든하다. 특급호텔에서도 단팥빵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국내산 팥을 듬뿍 넣어 1개의 무게가 200g이 넘을 만큼 묵직하지만 가격은 다른 빵보다 1000~2000원 정도 저렴한 3000원대다.

5년 전부터 지역 빵집으로 빵지순례를 다니는 젊은층이 늘면서 단팥빵 같은 기본 빵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앙포토]

5년 전부터 지역 빵집으로 빵지순례를 다니는 젊은층이 늘면서 단팥빵 같은 기본 빵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앙포토]

맛집 탐방에 이어 빵집 순례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층도 단팥빵을 즐겨 찾는다. 음식평론가 강지영씨는 “젊은층 사이에서 맛집 탐방이 일종의 놀이처럼 인기를 끌면서 지방까지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늘었고, 이들에게 이성당(군산)·성심당(대전) 등 지역의 오래된 빵집의 단팥빵이 눈에 띄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단팥빵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색상에 호두·통팥으로 식감 살려

생크림과 딸기, 녹차 등을 넣어 화려한 색감을 강조하고 다양한 맛을 낸 대구 '근대골목단팥빵'의 단팥빵들. [사진 근대골목단팥빵 인스타그램]

생크림과 딸기, 녹차 등을 넣어 화려한 색감을 강조하고 다양한 맛을 낸 대구 '근대골목단팥빵'의 단팥빵들. [사진 근대골목단팥빵 인스타그램]

추억·가성비만으로는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기는 어렵다. 단팥빵의 변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세계푸드 베이커리 상품기획을 맡은 김범준 선임마케터는 “단팥빵이 꾸준히 사랑받는 만큼 업체마다 식재료나 공법을 달리해 맛을 차별화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같은 단팥빵이지만 꾸준히 신제품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업체마다 단맛을 줄이는 추세다. 서울신라호텔은 설탕의 함량을 줄이는 대신 자일리톨을 넣어 단팥 특유의 구수한 맛을 살려 인기다. 롯데호텔서울은 단맛을 줄이고 유산균이 풍부한 막걸리 발효종을 첨가해 건강빵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요즘은 블루베리·녹차·망고·버터·생크림 등 다른 식재료를 추가해 색상도 화려해졌다. 백석예술대학 외식산업학과 제과제빵 담당 신태화 교수는 “마카롱·에클레어 같은 프랑스 디저트는 반짝 인기에 그쳤지만, 단팥빵은 갈수록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전부터 한국인이 팥을 좋아해온 데다 최근엔 팥에 고구마·호박·유자·생크림·버터 같은 다른 식재료를 섞어 맛과 색을 다양화해 젊은층의 입맛까지 만족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의 빵집 ‘근대골목단팥빵’은 생크림·녹차·딸기 등을 넣어 화려한 색과 다양한 맛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씹는 식감을 강조한 곳도 늘고 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단팥빵에 호두를 10% 정도 넣어 고소함과 식감을 살렸다. 뚜레쥬르는 역시 호두 단팥빵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CJ푸드빌 베이커리 임지혜 상품팀장은 “요즘은 통팥 앙금이나 호두 등 견과류를 넣어 식감을 살린 제품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메나쥬리는 2년 전 생크림·녹차를 넣은 단팥빵을 출시한 데 이어 이달 9일 국내산 통팥으로 소를 채우고 쫄깃한 식감을 살린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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