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IE] '혼혈과 함께 살기' 생각해 볼까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하인스 워드가 8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혼혈아동 희망 나누기 행사에 참석해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성 기자]


여당과 야당이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데 적극 나서기로 했다. 한국계 미국 프로풋볼리그(NFL·National Football League) 스타 하인스 워드 선수가 3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최근 농어촌에서는 국제 결혼이 늘면서 혼혈아도 급증하고 있지만 혼혈인을 멸시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혼혈에 대한 사회적 차별 실태와 편견 극복 방안 등을 공부한다.

◆혼혈이란=혼혈은 서로 다른 인종(또는 종족)이 결혼해 혼혈아가 태어나는 현상이다. 혼혈은 이질적인 두 집단이 인접한 경우와 이민, 전쟁으로 점령된 지역의 성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도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혼혈은 거의 모든 시대에서 볼 수 있으며, 세계 여러 지역에 분포한다. 혼혈아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보다 근대 유럽 여러 나라의 활발한 식민 활동은 물론 전쟁에 따른 이민족과의 접촉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혈인은 대개 차별 대우를 받아 사회적 지위도 낮은데, 흑인 혼혈의 경우 차별이 한층 더하다. 미국에서는 흑인 피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흑인으로 취급해 차별 대우가 심하다.

예로부터 혼혈에 대한 편견은 대개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했다. 생물학적으로 혼혈은 순혈보다 양친의 우수한 형질을 물려받아 키가 평균 이상으로 크고 강인한 등 부모보다 뛰어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순혈보다 혼혈이 오히려 낫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혈통주의를 고수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혼혈에 대한 편견이 심해 열등한 존재로 몰아붙이기 일쑤다.

혼혈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문화의 충돌'로 나타난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혼혈에 대해 기피하기도 하고, 심하면 법으로 금지하거나 인종 폭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미국에선 백인과 흑인의 제1대 혼혈아를 물라토(mulato)라고 부르며, 인도나 말레이시아 일부에서는 현지인과 백인의 혼혈아를 유레이지언으로 칭한다. 이 밖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혼혈아는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현재 혼혈아 비중이 가장 높지만 차별이 심하지 않은 곳은 중남미다. 이곳에서는 백인(특히 스페인계)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혼혈아를 메스티조(mestizo)라고 한다.

◆국내 혼혈 현황과 차별 실태=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단일 민족을 자랑으로 여기며 순혈주의를 고수했다. 몽고와 왜구 등의 침략을 당하며 일부 다른 민족의 피가 섞였지만, 피부색과 얼굴 생김이 비슷했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혼혈의 역사는 동두천 등 미군부대 주변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전쟁(1950~53년) 이후 미군과 우리나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국내 혼혈 1세대인 셈이다.

90년대 중반 이후엔 동남아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오면서 이들과 우리나라 여성 사이에서 혼혈 2세인 '코시안(Kosian)'이 태어났다. 2000년대부터는 우리나라 농어촌 남성과 동남아 여성의 결혼이 늘면서 코시안이 급증했다. 현재 코시안은 3만여 명에 이르며,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농어촌 남성의 국제 결혼율은 35.9%며, 대상은 주로 동남아 여성이었다. 전북 무주의 한 초등학교에선 내년 입학생 8명 중 절반이 혼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만 결혼한다'는 순수 혈통주의는 이제 허물어졌다. 학자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우리나라 여성의 농촌 기피 현상 때문에 앞으로도 혼혈이 크게 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다인종.다문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얘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국내 혼혈인의 약 40%가 차별에 따른 고통을 겪다 자살 시도까지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순혈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의 배타주의 결과다. 현재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단일 민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고등학교 국사 12쪽엔 "우리 민족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기술했다.

혼혈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어린이가 '왕따'당하는 바람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가난과 소외의 대물림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혼혈 어린이들은 30%가 넘는다.

혼혈인들은 사회적 편견뿐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차별을 받아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혼혈인은 병역의무를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병역법(시행령 제136조)에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의 경우 제2국민역에 편입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혼혈인은 어려서부터 집단따돌림를 당해 단체생활 적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올부터 자원하면 군대에 갈 수 있지만 실제로 입대한 혼혈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 조종도 기자 <taejong@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