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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로스쿨, “로스쿨 정착 못한 건 어려운 변시 때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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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도입 취지가 애초 기대에는 못 미치고 있습니다.”

4일 오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대회의실에서 발표자로 참석한 윤지현 교수는 “로스쿨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판례 암기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로스쿨이 주최한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로스쿨 도입 10년을 맞았지만 본래의 취지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간담회에서는 입학ㆍ장학 제도 개선 방향 등 로스쿨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됐다. 특히 최근 합격률 논란이 불거진 변호사시험 제도에 대한 내용이 토론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4일 오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최한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 [연합뉴스]

4일 오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최한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 [연합뉴스]

서울대 “지나치게 어렵고 경쟁적인 변호사시험이 문제”

이날 서울대 로스쿨은 17명의 소속 교수와 서울대 법학연구소ㆍ아시아태평양법연구소가 공동 기획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현재 로스쿨 교육이 도입 당시의 이상과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이유는 대부분 지나치게 어렵고 경쟁적인 변호사시험 때문이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대 로스쿨은 지나치게 어려운 변호사시험이 가져온 문제로 ▶학생들이 수험 지식에만 치중하는 점, ▶도입 취지 중 하나였던 특성화된 법조인 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점, ▶졸업생들의 진로가 다양하지 않고 이미 포화한 송무 위주에 집중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4일 오전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이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이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87.1%였지만 계속 낮아져 2018년에는 처음으로 50% 아래(49.35%)로 떨어졌다. 법무부가 로스쿨 입학 정원 대비 합격자 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로스쿨은 “합격률 때문에 변호사시험을 어렵게 하려다 보니, 학생들에게 지나친 암기량과 정보량을 요구해 오히려 좋은 법률가 양성에 방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응시자 대비 70% 내외로 합격률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이형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변호사시험의 형평성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입학 정원 대비 합격률을 정해 놓는 방식의 변호사시험 제도가 큰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초기에 변호사시험을 본 사람은 합격이 매우 쉬웠고, 지금 응시하는 사람들은 합격이 어려워져서 매우 불리하다”며 “이런 형평성 문제가 로스쿨의 교육 과정 자체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때문에 학생들이 기초법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이 초래됐다”고 덧붙였다.

“변호사시험 합격률 높이면 해결되나?”

이날 간담회에 참가한 패널들은 현재 로스쿨의 교육이 도입 당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대통령도 헌법에 따라 탄핵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우리 국민들은 훌륭한 법률가 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로스쿨 교육은 판례 암기 등 너무 지엽적인 것에 집중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스쿨의 3년 과정은 학생들이 기본적인 법률 소양을 갖추고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지적된 로스쿨의 여러 문제점은 분명 고쳐져야 하지만, 합격률을 높이는 것이 그 해법이 될지는 의문이다. 합격률을 70%대로 올린다고 해서 학생들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춘호 SBS 논설실장은 “변호사시험 제도를 완전히 바꿔서 합격 제한을 없애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합격률을 조금 더 올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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