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만에 서울시 금고지기 바뀐 건 출연금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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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금고 입찰 경쟁에서 신한은행이 1금고에 선정됐다. 2금고는 우리은행이 됐다. 이로써 104년간 이어진 우리은행의 서울시금고 독점 운영이 막을 내리게 됐다. 서울시는 3일 금고지정 심의위원회를 열고 1금고 우선협상 대상 은행에 신한은행을 선정했다. 그동안 시금고를 단수금고로 운영해왔던 서울시는 이번에 처음 복수금고를 도입했다.

서울시의 예산은 총 34조원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날 결과에 따라 1금고로 선정된 신한은행은 일반·특별회계예산(약 32조원) 관리를 담당한다. 2금고로 선정된 우리은행은 각종 기금(약 2조원) 관리를 맡는다. 1금고는 수시로 돈을 넣고 빼는 입출금통장, 2금고는 일정 기간 돈을 묵혀두는 정기예금에 가깝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내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4년간 서울시금고를 관리하게 된다.

이번 시 금고 선정에는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모두 도전장을 던졌다. 이번 입찰은 서울시가 104년 만에 처음으로 두 개의 시금고를 운영하기로 하면서 진행됐다.

이날 금고지정 심의위원회는 대내외적 신용도와 재무구조 안정성(30점), 시에 대한 대출·예금금리(18점), 시민 이용 편의성(18점), 금고업무 관리능력(25점), 지역사회 기여와 시 협력사업(9점) 등 5개 분야 18개 세부 항목으로 은행을 평가했다.

이번 복수 금고 채택으로 단수 금고 체계는 깨졌지만, 출연금이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금고를 운영하기 위해 신한은행은 3000억원, 우리은행은 1100억원의 출연금을 서울시에 내기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출연금은 5개 평가 분야 중 ‘지역사회 기여와 시 협력사업’(9점)에 해당해 4점을 차지했다. 출연금은 은행에서 서울시민을 위해 내는 일종의 기부금으로, 세입 처리돼 서울시의 사업비로 쓰인다.

은행들이 거액의 출연금을 감수하는 데는 ‘최대 지자체 금고지기’가 되면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는 판단에서다. 또 시금고는 서울시청에 지점이 들어온다. 이로 인해 1만8000명이 넘는 서울시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서울시의 거래처들도 시금고인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금고 유치가 출연금에 비해 은행 수익성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1·2금고의 예산과 기금 모두 서울시가 예산 편성 등을 이유로 자주 출금을 해 은행들이 굴릴 수 있는 돈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정확한 액수를 예측하고, 밝힐 순 없지만, 특히 2금고의 경우엔 일정기간 묵혀두는 기금의 비중이 높아 은행에서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이 1조원은 넘을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시금고는 1915년 조선경성은행(현 우리은행)이 당시 경성부 금고를 관리한 이래로 85년 동안 우리은행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맡아왔다. 서울시가 99년 일반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한 이후에도 20년 가까이 우리은행은 시금고 유치에 성공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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