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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잘나가지만 … 장비업체는 세계 톱10에 하나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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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반도체 소재 업체인 A사는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이 회사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5200만원으로 많은 편이지만 평균 근속기간은 5년이 채 안 된다.

중소기업 연구 인력 대기업에 뺏겨 #인력난 → R&D 부실 → 경쟁력 저하

이 회사 인사 담당자는 “관련 분야 전공자가 별로 없고, 이들마저 대기업만 들어가려 하니 연구개발(R&D) 자체가 힘들다”며 “결국 회사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역대 최대 호황을 맞고 있지만 장비·소재·부품 같은 이른바 반도체 후방산업은 이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60%나 되지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10.1%다. 반도체 소재도 9.9%에 불과하다. 국내 업체 중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 10위권에 드는 곳은 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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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 후방산업의 국산화율은 평균 30%에 못 미친다. 장비의 경우 국산화율은 18.2%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선 AMAT이나 램리서치 같은 미국 업체 제품을 주로 쓴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10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장비 구매에 평균 7조원을 쓴다. 이 중 5조6000억원은 외국 업체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인력난도 부담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계 전체의 산업기술인력 부족률(2016년 기준)은 1.5%다. 그러나 후방산업만 따로 떼어 놓으면 5%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에프에스티 장명식 회장은 “지난해 80명 정도의 직원을 뽑으려고 했는데 절반도 못 채웠다”며 “수년째 30~40명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간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이른바 ‘대기업 산업’으로 분류하고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은 점도 후방산업을 ‘언더독’으로 만든 원인이다. 정부의 반도체 R&D 지원은 가장 많았을 때가 연간 900억원 선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아직 새 프로젝트 지원이 없다.

최재성 극동대 반도체장비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려면 공정이 더 복잡하고 까다로워져 이에 맞는 장비와 신물질 등 소재가 뒷받침해 줘야 한다”며 “후방산업의 지원이 없다면 결국 전방산업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산학 연계, 중소업체 간 공동개발이나 연구개발비 직접 지원 등으로 기술혁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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