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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달라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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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국은 노조파업과 과중한 복지부담, 그리고 근로의욕의 저상-이른바 「영국병」이란 고질때문에 끝내 역사의 제2선으로 탈락하고 말겠구나 하는것이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아니었던가 싶다.
필자 자신도 만3년전 런던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올때 과연 영국이 「영국병」에서 벗어나 재기의 신화를 만들어 낼것인지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었었다. 만나본 여러 영국인들조차 영국은 이제 일류국가가 아니라고 스스로 체념과 자조를 내보였었다.
어딘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다가 사람들은 신바람이 없어 보이고 도시전체는 활력을 잃은 잿빛의 색깔이란 것이 그동안 영국을 찾을때 받게 되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가보고 듣고 느낀 영국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선입견과는 딴판이었다. 히드로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훨씬 깨끗해진 건물구내하며, 시쳇말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밝아진 사람들의 표정등 전에 못느꼈던 활기가 몸에 와닿는 기분이었다.
런던시내 넬슨동상이 서있는 트라팔가광장주변등 시중심지일대에는 재개발사업과 증·개축공사가 곳곳에서 한창이고 런던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템즈강에는 유람선이 부쩍 늘어 붐비는 모습이었다.
이미 웨스트민스터의 빅벤은 몇년전 새로 단장을 했지만 시내 건물들도 우중충한 색깔을 벗어버리고 밝은 색으로 갈아입는 작업이 많이 눈에 띄었다.
특파원시절 「선진국의 기지」를 특별취재할때 런던시내 공원 곳곳에 아침부터 술병을 차고 앉아 실의에 빠져있는 실업자들을 흔히 목격할수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광경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달라진 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만이 아니다.
각종 경제·사회지표와 기업들의 경영개선이 괄목상대할 정도다. 적자수렁에서 허덕이던 석탄공사·영국철강·영국항공등이 민영화및 합리화 노력의 결과 모두 흑자로 돌아섰는가 하면 최근 미국을 물리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려 80억파운드 (1백40억달러) 규모의 전투기수왕에 성공, 기세를 올렸다.
영국의 GNP성장률 (작년 4.8%)이 유럽국가들중 가장 높은수준을 유지,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얘기는 구문이지만 11∼13%대를 오갔던 높은 실업률이 요즘엔 8.7%(5월)로 뚝떨어진 사실이 보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2년사이에 실업자수가 약70만명이나 줄어 지금은 2백40만명선이고 내년에는 2백만명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는것이 경제전문가들의 일치된 전망이기도 하다.
특히 서방유럽국가들 가운데 독야청청 재정흑자를 누리고 있어 다른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작년에 20억파운드 (약2조6천억원) , 올해는 그이상의 흑자를 바라보고 있다.
7년연속의 착실한 경제성장과 안정된 물가 (연4%안팎)덕분에 실질소득이 늘어 국민의 소비지출도 크게 증가했으며 기업의 신규투자도 올해 실질기준 9%이상의 증가가 예상돼 최근 20년새 가장 활발한 투자활동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경제호조를 배경으로 영국 파운드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강세통화로 올라섰고 「대처」의3기 장기집권길이 열렸던 것이다.
영국버클리은행의 한중역은 영국의 경제상승이 적어도 10년이상은 갈것이라고 낙관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다음에도 「대처」에게 투표하겠다고 털어놨다.
파이낸셜 타임스, 선데이 타임스등 주요신문들은 「영국의 생산성기적」「영국경제건강지수는 우」등의 제목으로 영국경제의 회복을 대서특필하고 있고 야당은 적당한 공격목표를 못찾아 고민하고 있는 판이다.
한편 유럽경제의 엔진역할을 해온 동독은 요즘 영국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있는 형세다.
투자율은 선진7개국중 최하위이고 재정적자는 GNP대비 미국보다 높은 3%나 되고 있으며 성장률은 크게 둔화, 작년에 1.5%에 머물렀다.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데다가 고임금이고 과다한 복지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높은 세율 (법인세의 경우 영국의 두배) 로 기업활동과 경제는 급속히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생산성증가율을 보면 85년이후 동독은 영국의 절반수준도 채 못되고 있다.
그래서 유럽의 매스컴들은 이제 영국병은 동독의 병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직 종합평가에서 동독이 한수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독이 쉽사리 「영국병」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으로 보아 유럽경제의 엔진역할을 영국이 맡아야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하는 이코노미스트들도 나오고 있다.
70년대 증반 IMF로부터 돈을 꾸어다 나라살림을 지탱해야만 했던 영국이 경제모범국가였던 동독을 제치고 이렇듯 기세를 올릴수 있는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영국인들 스스로 불명예의 「영국병」을 치유하는데 성공한 때문이다.
그 병을 고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잠재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대처」수상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밀고나가 「영국재기」의 기적을 낳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을 다시 일으킨 「대처리즘」의 요체는 철저하게 「자기발로서는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노동당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벌여놓은 수많은 복지제도와 국가통치를 위협하는 노조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수술하지않는한 영국의 장래는 없다는 판단이 「대처리즘」의 기조에 깔려있다.
그래서 「대처」는 집권직후부터 국영기업의 과감한 민영화를 추진해오고 있고 적법·타당치 않은 노조파업엔 결연히 맞서 이를 꺾었다. 또 복지지출은 무정할이만큼 삭감해 나갔다.
그리고는 세금을 낮추어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민간경제의 활력을 소생시키는데 전력을 다했다.
대처리즘 10년. 이제 그효과는 영국사람들의 얼굴표정과 어깨 그리고 도처의 공사판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국경제가 아무런 문제 없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값의 대폭 상승등 물가불안과 소비증대로 인한 국제수지악화, 복지제도에 의존해왔던 빈곤층의 볼멘목소리등 외면할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은「영국병」에 비하면 그렇게 풀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똑같은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서라도 영국이 걸어온 길을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제훈 <부국장대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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