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실타래 풀려고 예정대로 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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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오른쪽)이 멕시코 티후아나에 있는 현대 트랜스리드 공장을 방문해 공장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현대차는 7일 정 회장의 미국·멕시코 일정을 소개하는 사진 2장을 언론에 배포했다. [현대·기아차그룹 제공]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가 7일부터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8일 새벽 귀국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번 주말 재경.법무.기획.홍보 등 주요 부서의 대리급 이상이 전원 출근한다고 밝혔다. 다음주께로 예상되는 검찰의 정 회장 소환에 대비해 모든 가능한 변수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 왜 서둘러 귀국하나=무엇보다 검찰의 수사 강도가 해외에 머무른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 회장의 출국 다음날인 3일 검찰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출국금지하며 비자금 수사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최근까지 귀국 일정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지만 예정대로 귀국해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출국 이후 검찰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결정적인 자료를 다량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고, 6일에는 이번 수사의 목적이 '부의 축적이 정당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검찰은 정 회장의 귀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아울러 '외국으로 피한 것 아니냐'는 여론의 눈총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부근에 머무르면서 검찰 수사 상황 등에 관해 현대차 경영진과 로펌의 조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단서를 잡고 '밥을 짓는 단계'까지 이른 검찰 수사를 정 회장이 피해가기는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음을 감지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오히려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정 회장은 특히 현대차 전.현직 경영진이 검찰에 잇따라 제보를 했고 수사까지 이어진 배경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 어떤 보따리를 들고 올까=정 회장이 어떤 수습책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릴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아직 수습책을 내놓을 시기가 아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나와 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비리사건 등에 연루됐던 국내 주요 그룹이나 오너의 전례 등에 비춰보면 정 회장이 미국에서 수습책 등을 마련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수습책을 내놓는 시기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가 될 것이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앞으로의 사회 공헌 활동 방향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우선 8일 입국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사과나 검찰 수사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왔던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로 볼 때 "당국에서 밝히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할 수도 있다.

현대차의 수습책으로는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논란이 된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 헌납 등이 현대차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 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쉽게 포함될 수습책은 아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협력 부품업체에 대한 단가 인하 방침이 이번 사태를 부른 한 요인으로 보고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중소 부품업체와 협력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적인 지원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문경영인 책임경영체제를 도입해 오너의 경영 간섭을 줄이고, 윤리.투명 경영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 현지 법인 등 여러 곳 방문=현대차는 7일 정 회장의 해외 일정에 대한 자료를 현지에서 찍은 사진 2장과 함께 배포했다. 정 회장은 미국 LA와 캘리포니아를 오갔으며 멕시코 티후아나까지 방문했다.

현대차 측은 자동차로 미국 국경을 넘나들며 경영 활동에 전념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의 일정은 출국할 때 현대차 측이 밝혔던 애초 일정과는 달랐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조지아주 기아차 공장 기공식이 연기돼 일정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장시간 자동차 이동에 따른 신체적인 피로함보다 국내 상황이 정 회장을 더 힘들게 했다"면서 "'글로벌 경영에 전력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현대차가 이렇게 몰렸느냐'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김태진.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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