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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연기 징크스' 이번엔 깨졌다

중앙일보

입력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에 진행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의 공통점 중엔 '막판 연기' 징크스가 있다. 두 정상회담은 모두 평양에서 열렸고, 공동선언도 발표했다.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새천년민주당(2000년)과 열린우리당(2007년) 정부 때 성사된 것도 닮은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두 정상회담은 개최 직전에 연기됐던 점도 비슷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12일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날 북측의 요구로 하루 연기돼 13일부터 15일까지 열렸다. 정상회담을 준비했던 임동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북측이 기술적인 문제로 연기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로 움직였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북측에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중에 다른 성격의 설명도 등장했다. 당시 정상회담 연기는 북한에 지급키로 했던 대북 송금(1억 달러)이 늦어졌기 때문이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2003년에 특검이 진행돼 현대아산이 국가정보원의 계좌를 활용해 송금한 4억 5000만 달러 가운데 1억 달러가 정부의 정책지원금으로 나타났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땐 천재지변이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였다. 당초 남북은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지역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결국 이번에도 북한의 요청으로 정상회담이 계획보다 35일 늦어진 10월 2일 시작됐다.

이번엔 일부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연기 징크스’가  또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유엔군이 관할하는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는 만큼 북한이 경호와 안전을 이유로 갑자기 일정을 늦추자고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번엔 징크스를 피하게 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앞서 26일 오후 “회담 장소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마지막 정상회담 리허설이 진행됐다”며 “(남북) 양측의 수행원들은 평화의집에서 두 정상의 회담장과 만찬장 휴게실의 조명과 꽃장식까지도 둘러봤다”고 알렸다.
 '연기 징크스'는 피할 수 있게 됐지만 대신 정상회담에 앞서 실시키로 했던 남북 정상 간의 핫라인(직통전화) 통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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